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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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8
《비켜께라, 물러께라! 진령군대감께서 행차하신다. 쉬이-》
호기있게 지르는 벽제소리를 앞세우고 화려하게 장식된 진령군 박소사의 가마가 초라한 려인숙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뜨락에 웅기중기 모여있던 거사며 사당들은 물론 방안에 있던 귀얄수염쟁이 모가비까지 마당으로 황급히 뛰여나와 맨땅에 꿇어엎드렸다.
가마에서 거드름스럽게 내린 진령군이 꺾은채로 지은 초가이영인 려인숙을 시들하게 둘러보더니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전라도사당팬가?》
귀얄수염쟁이 모가비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척했다.
《그러하옵니다, 대감마님.》
《임자가 모가비인가?》
진령군의 거만한 물음에 모가비는 또 머리를 조아렸다.
《예이.》
《내 존귀하신 곤전마마의 분부를 받잡고 임자한테 긴한 당부를 하려 들렸네.》
《?!…》
모가비뿐만아니라 마당의 광대모두가 긴장한 눈길로 진령군을 쳐다보았다.
《임자네 전라도사당패에 생광스러운 일이 생겼네. 중전마마께옵서 래일 대보름밤에 임자네 사당패의 놀이를 몸소 보시겠다고 임자네를 입궐시키라는 하교가 내리셨네.》
《예에?!…》
의외의 놀라움으로 눈이 커진것은 모가비뿐이 아니였다. 근 스무명의 거사며 사당모두가 놀란 입들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니 빈틈없이 차비하고 래일 달뜨기 전에 입궐하도록 하게. 잘만 하면 후한 상을 받게 될걸세. 그래, 임자네 놀이에는 어떤것들이 있나?》
광대들의 도장수격인 거수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읍을 하였다.
《소인이 말씀올리겠소이다. 우리 사당패에는 소리광대와 놀이광대가 있사온데 소리로 말하오면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긍가〉등 판소리와 〈유산가〉, 〈제비가〉, 〈배놀이가〉, 〈긴륙자배기〉, 〈화초사거리〉, 〈흥타령〉, 〈매화타령〉등 잡가들이옵고 춤가락으로는 〈농악무〉, 〈칼춤〉, 〈승전무〉, 〈사당춤〉, 〈학춤〉, 〈강강수월래〉등이옵니다. 그리구 놀이광대로는 〈탈춤〉, 〈꼭두각시〉, 〈바줄타기〉, 〈택견〉…》
진령군이 얼굴을 찡그리며 거수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런것뿐인가. 그런거야 어느 사당패나 다 하는게 아닌가?》
거수가 황급히 주어섬겼다.
《예예. 소인이 방금 말씀드리려던 참이였소이다. 우리 전라도사당패의 재기는 마상재올시다, 달리는 말우에서 재주부리기, 비수던지기. 보는 사람마다 손에 땀을 쥐게 되지요.》
그제야 진령군의 낯색이 풀리며 입이 벙글서해졌다.
《응, 나두 임자네 마상재가 재기라는 말을 들었네. 중전마마께서도 무척 좋아하실거야. 그러니 마상재를 특별히 잘하도록 하게. 그러면 특별상을 하사받을지도 몰라. 알겠나?》
진령군을 말그대로 대감 모시듯 사립밖 멀리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전라도광대들은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들은 금년 정월대보름은 참으로 경사라고들 했다. 사실 경사라면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서울구경을 한것만 해도 큰일인데 래일 밤엔 구중궁궐 대궐에 들어가 지엄한 나라님과 국모님앞에서 놀이판을 벌리게 됐으니 어디 꿈엔들 생각할 일이냐고들 했다. 더우기 중전마마께옵서는 기분이 좋으면 광대들에게 돈천을 아낌없이 뿌려준다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한밑천 잘 잡게 되였다고 춤을 덩실덩실 추며 돌아갔다.
《다들 듣거라.》
흥에 떠서 돌아가던 광대들은 모가비의 소리에 진정되였다.
《너희들도 들었지만 참으로 생광스러운 경사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이제부터 미흡한 점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 거수, 자네가 신칙을 잘허게.》
그의 말에 따라 광대들은 분주탕을 피우며 돌아쳤다.
광대들은 사당패라고도 하였는데 19세기 후반기 이후부터 더욱 왕성해졌다. 보통 수십명으로 구성되여 각지로 떠돌이하며 공연을 하여 벌이를 하였다. 모장 혹은 모가비라고 불리운 우두머리는 주로 재정을 장악하고 거래를 맡아보았고 녀자광대인 사당과 남자광대인 거사들을 직접 다스리는것은 거수라고 하는 남자거사인데 이 거수가 춤과 노래에 대한 지도를 맡아하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날이 어두워오는데 거사 천태봉이와 사당 변옥절이가 종적없이 사라졌던것이다.
귀얄수염쟁이 모가비는 버선발로 마루를 탕탕 구르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빨리, 빨리들 찾아라! 마상재와 비수던지기가 없으면 우리 놀이에 뭐가 볼게 있느냐! 중전마마께서도 그것을 보시자고 우릴 대궐로 부르신게다.》
거사며 사당들이 사방으로 뛰여다니며 태봉이와 옥절이를 소리쳐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이 어디에 갔단 말인가. 서울에 처음 오니 친척은 물론 아는 사람도 없는 그들이 아닌가.
《태봉이!》
골목을 누비며 거사들이 목이 터지게 소리쳐불렀다.
《옥절아!》
애타게 찾았으나 태봉이와 옥절이의 대답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모가비는 토방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손바닥으로 마루를 두드렸다.
《망했구나, 망했어! 어이구…》
그의 넉두리에 뜨락에 서있던 광대들의 얼굴도 사색이 되였다. 중전마마의 하사품은 고사하고 어명을 어겼으니 포도청신세를 지게 될것이 아닌가.
모두가 울상이 되여있을 때 거수가 래일까지는 옹근 하루가 남아있는데 그전에 나타날것이라고 그들모두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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