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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의 역사(2)   10-08-23
나그네   3,928
 
                                                  개싸움의 역사(2)

   1차 세계대전은 다소간 낭만적이었던 19세기 벨 에포크(la Belle Epoque;아름다운 시절)

를 한순간에 쓸어버린 끔찍한 전쟁이었으나 기술과 공학의 입장에서는 경이로운 발전을

이룬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고래로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가 나왔던 것이라던가,

임진란이 끝나고 한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이 출판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인류문명사

의 어두운 부분, 즉 전쟁이 인류문명발달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20세기 전쟁의 총아가 돼버린 전차와 항공기 그리고 잠수함과 화학무기가 모두 1차대전

기간에 나왔으니까요. 특히 그중에서도 항공기분야의 잠재력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항공기는 그 어떤 다른 무기보다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날 항공교통

수단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만 봐도 분명하겠죠?

 

   라이트형제가 키티호크 들판에서 처음 자력으로 떠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선보인 이래,

대다수 항공개발자들의 고민은 바로 비행기를 하늘에 안정적으로 띄울 수 있는 양력(이른

바 뜨는 힘)을 얻는 일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는 새가 하늘

을 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새는 자신의 근육에서 얻는 힘으로 날개를 펼쳐서

하늘을 날고 인간이 만든 비행기는 바로 엔진이 주는 힘으로 날개에 양력을 얻어서

나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그런데 초기 비행기들은 바로 하늘을 나는 힘을 주는 엔진의 크기와 성능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지요. 충분한 힘을 내는 엔진은 너무 무거워서 비행기에 실

을 수가 없었고, 기체가 버텨낼 수 있는 정도의 엔진들의 출력은 너무 약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충분한 양력을 얻기 위해서 다른 물리적인 보완장치를 하게 됩니다.

바로 날개를 하나 더 얹는 방법이었지요. 비행시대 초기 비행기들이 복엽기라고 불리

우는 형태를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엔진의 출력이 약하다 보니, 그걸 보완해주

기 위해서 날개를 하나 더 달게 된 거지요. 이미 말씀 드린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이

탑승했던 전투기는 그런 날개가 3개나 달린 이른바 삽엽기 스타일이었답니다. 세간에 포

커 삽엽기로 알려진 놈이지요. 그러나 초기 전투에 쓰였던 복엽기들은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을 성공한지 20년도 채 되지 않아 이미 안정적인 비행은 물론 여러 가지 곡예비행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선회능력을 선보였고 초기 비행개발자들은 바로 이 순회 곡예비행을

통해서 돈을 벌어 생계해결은 물론 다음 비행기를 설계할 돈을 마련하곤 했답니다. 오늘

날에도 여전히 곡예비행에 한물 갔다고 여겨지는 복엽기가 쓰이는 이유도 각종 선회를

할 때 단엽기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인 양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날개가 2,3개로 겹쳐지다 보니, 비행기의 형태는 오늘날과는 달리 둔탁

한 모양이 되고 말았고 필연적으로 공기의 저항이 너무 커져 일정이상의 속도를 내지는

못합니다. 안정적으로 날기 위해서 날개를 추가했는데, 그러다 보니 속도의 한계에 직면

한거지요. 그런데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더 높이, 더 빨리 날수

있는 항공기의 요구가 커졌죠.

 이후 가벼우면서도 더 큰 출력을 내는 엔진의 개발과 더불어 공기저항을 적게 받는 유선

형 기체와 공기저항의 주원인인 날개의 수를 하나로 줄여버린 단엽기 형태의 설계가 탄생합니다.

항공기가 오늘날과 같은 단일한 날개의 단엽기 형태가 되기 위해선 단엽기 형태의 날개

로도 충분한 양력을 낼 수 있는 고성능 엔진개발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

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다음 세계 대전이 발발하는 20년의 전간기(interwar-period) 내내 항공기

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합니다. 초기 우편물 수송(수많은 비행관련 걸작을 남긴 어린 왕

자의 저자 생텍쥐베리가 바로 이 우편 비행기 조종사 출신입니다)으로 많은 시간을 절약

할 수 있음이 입증 된 이후 곧 전투기를 만들었던 항공사들은 그 어떤 다른 수송수단보다

더 신속하게 인력과 물자를 실어나르는 항공 산업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미 20년대 중반

이후 여객과 화물 수송을 위한 대형항공기들을 속속 만들게 됩니다. 또한 이제까지 제한

적인 비행거리를 더 늘리기 위해서 더 강력하고 가벼운 엔진 그리고 더 비행에 적합한 기

체의 설계에 주력합니다. 그러면서 재계와 언론은 경쟁적으로 상금을 걸고 장거리 비행

을 촉진하게 되죠.

 

   이 시기 가장 유명했던 사건이 바로 찰스 린드버그의 단독 대서양 횡단비행이었습니다.

1927년 5월 20일,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라는 자그마한 단엽기를 몰고 무려 33시간이

넘는, 목숨을 건 단독비행 끝에 린드버그는 미대륙에서 대서양을 건너 파리에 도착하자,

항공산업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고 그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밝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유력한 경쟁자였던 비행선이 34년 힌덴부르크호의 대폭발 참사

로 인해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때 린드버그가 날았던 비행거리는 무려 5800킬로미터였으니, 라이트 형제의 첫 단독

비행시 14초간 220미터에 비하면 30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항공산업은 비약적인 도약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대양을 건널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출력을 내는 엔진의 개발과

더불어 여태까지 목재로 만들어지던 비행기의 기체 역시 더 가볍고 튼튼한 소재의 알미늄

과 같은 금속으로 점차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날때까지 여전히 목재는 항공

기 소재의 주요한 일부로 사용됩니다. 점점 장거리 비행이 활성화되면서 항공기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일단 먼거리를 안정적으로 찾아가기 위해 각종 항법장치들이 필요하게 되

었고 높은 고도를 날수 있게 되면서 비행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를 표시하는 계기판들도

하나 둘 늘어나게 됩니다. 오늘날 비행기의 계기판이 그토록 복잡해진 이유도 이 때문이

지요. 기껏해야 속도계와 연료 표시장치가 붙어 있었던 1차대전 시기의 전투기에 비해

전간기 항공기들은 여러 가지 비행표시장치로 조종의 편의와 안정성을 높입니다.

 

   그러나, 정작 항공기의 발전을 가장 촉진했던 것은 바로 전간기 내내 계속되었던 전쟁의

발발가능성이었습니다. 이미 1차대전으로 항공기의 무서운 잠재력을 확인했던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승전국은 물론 전쟁에서 패해 군비확충이 제한된 독일마저도 항공

기가 다음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을 내다본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항공기가 점점 대형화가 가능해지자, 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미래전쟁을 주도할 기종으로 1차대전의 공중전의 주역이었던 전투기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폭격기가 주목을 받게 됩니다. 물론 1차 대전 당시에도 폭격기가 실전에 참여하기는 했

으나, 초기의 폭격기들은 그야말로 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는 원시적 수준이었고 명중률이

나 효율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크고 느린데다 둔하기까지 해 곧잘 전투기의 밥이 될 뿐

이었지요. 그러나 1차대전으로 이미 총력전의 개념을 체득하게 된 열강들은 대형화된

폭격기로 적국의 주요 산업시설과 도시들을 초토화 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른바 전략

폭격의 개념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서 미래전쟁의 주역을 폭격기로 설정합니다.

 

   특히나 이러한 전략폭격의 논리를 주도했던 이가 오늘날 미공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빌리 미첼 장군이었습니다. 1차대전 당시 파일럿으로 참가해 항공력의 미래를 체감한

미첼은 전쟁이 끝난 후 돌아와 꾸준하게 항공력 증강을 역설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폐기될 예정이던 구식 전함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아무리 장갑이 두터운 전함이라도 항공

기의 공격을 견뎌낼 수 없음을 입증합니다. 이미 20여년 전에 진주만기습을 예견했던

셈이지요. 불행히도 미첼은 너무도 과격하게 항공력의 우위를 주장하다 군지휘부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려 결국 불명예스럽게도 강등을 당하고 강제예편을 당했지만 이후

미 육군 항공대(당시만 해도 항공대는 독립된 군이 아니라 육군 혹은 해군에 소속된 부대

였습니다. 미 공군은 47년에야 독립합니다)는 꾸준하게 미첼의 논리를 발전시켰고 폭격기

를 주력으로 하는 항공대를 꿈꾸게 됩니다.

 

  미군이 이토록 장거리 폭격기를 선호하게 된 배경에는 지정학적인 논리가 숨겨져 있었

습니다. 미육군은 넓은 영토와 긴 국경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비군 숫자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군대였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상비군 수는 13만에서 15만 정도였으니, 적은 병

력으로 효과적으로 국토를 관리하는데 항공기는 딱 적합한 대안이었지요. 라이트 형제의

첫 작품이었던 플라이어 1호기를 사들인 게 미육군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아울러 동부와 서부를 잇는 중요 항로인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고 난 이후에는 더더욱이

나 장거리 폭격기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전투기는 등한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다가올 전쟁에서 미항공력의 약점으로 부각될 것임을 예상한 클레어

셰놀트 같은 소수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간기 미항공력은 1차대전의 주역이었던

전투기들보다는 폭격기 위주의 항공대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적지 않은

댓가를 2차대전에서 치르게 되지요. 전쟁초기 일본의 제로기에게 쩔쩔맸던 이유도 전

투기개발에 등한시 했던 것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은밀히 재무장을 추진(흔히 히틀러가 집권하면서부터 독일

의 재무장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독일은 히틀러 이전부터 이미 서서히 재무장

을 추진하고 있었다고 보는게 오늘날 역사가들의 평가입니다)하면서 누구보다 더 항공

력에 집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1차대전 패배의 결과로 기존의 무기체계들은 승전국

들의 철저한 감시속에 제한을 받았지만 그에 비해서 아직 미성숙단계였던 항공분야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했던 탓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독일은 오토 릴리엔탈(글라이

더 비행의 선두주자였던)의 전통을 이어받아 전국적으로 글라이더 비행클럽을 육성했

고 이들은 후일 대부분 2차대전에서 항공대 파일럿으로 맹활약하게 됩니다.

  전통 깊은 독일 기계공업력의 뒷받침에 힘입어 독일은 점차로 우수한 항공기들을 개발

하였고 특히나 타고난 대륙국가답게 육군을 지원하는 항공력의 개념에 치중하게 됩

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게 바로 공군의 공중폭격과 지상의 기갑부대를 결합한 전격전.

블리츠크리그(Bllitz Krieg)로 세상에 알려질 이른바 입체전 사상이었습니다. 독일

군은 여기에 미해군이 개발해낸 급강하 폭격의 개념을 지상폭격에 차용해서 이후 2차

대전초기의 대승을 이끌어내는데 톡톡히 이용합니다. 상대가 등한시하고 있던 분야

에 집중투자해서 성공한 경우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입체전

개념을 맨처음 구상했던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전략가들이었고 이러한 개념이 정작

이걸 생각해낸 나라에서는 별볼일 없는 생각으로 치부되었다는 것입니다. 2차대전 당시

자유프랑스를 이끌었던 샤를 드골은 중견장교였던 30년대에 '칼날'이라는 저서를 통

해서 기갑부대와 항공대를 결합시키는 입체전의 개념을 주창했지만 정작 이 책을 열심히

읽었던 이들은 적국이었던 독일군인들이었고 마지노 요새만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프랑스군 수뇌부에 의해서는 망상에 가까운 공상으로 치부되고 말았으니까요. 전통적인

해군강국이었던 영국 역시도 육군의 일부 장교들이 주장했던 입체전의 개념을 그다지

중요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든 나라들이 간과했던 공통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다가올 전쟁의 검은 먹구름속에서 가장 유효할 항공병기는 전략폭력기도 지상을 지원하는

공중포병의 개념인 전격전을 수행할 급강하폭격기도 아닌, 바로 전투기가 되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열강 모두가 일정수준의 전투기들을 개발해놓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 다가올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하게 될 핵심요소가 될 줄을 예상했던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들을제외하고는요.

 

 

 

 

  다음번에는 바로 이 전투기가 어떻게 해서 2차대전의 총아이자 미래의 전쟁을 좌우할

필수요소가 되는지 그리고 2차대전과 1차대전의 공중전은 어떤 차이와 공통점이 있는

지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2차대전은 복엽기로 시작해서 제트기로 끝났던

전쟁인지라, 몇 편에 걸쳐서 진행될 것입니다.

 
강산 10-08-23 01:12
 
독파이팅이 점점 흥미롭게 전개되는군요.  나그네님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합니다.

문명의 이기인 비행기를 서로 더 많이 죽이는 전쟁에 적극 이용하였으니
인간인지 개인지......개싸움이라는 제목이 제대로 된 것 맞습니다.

한데..........개는 그렇게 다른 개들을 물어 죽이지 않는데........
개보다 못한 것이 인간...........
제이엘 10-08-23 09:37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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