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로그인 하시면 표시됩니다.



[김영승 칼럼] 영광 박막동부대 활동지역과 태청산을 답사하다   22-08-17
강산   918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김영승 선생이 동지들과 함께 영광 박막동부대 활동지역과 장성 태성산 정상을 답사하였다. 선생께서 고령의 나이지만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그의 고향 땅 인근에서의 빨찌산 투쟁의 산 증인으로서 당시 투쟁의 현장을 답사하며 남긴 이 귀중한 글을 게재한다. [민족통신 강산 기자]


[김영승 칼럼] 영광 박막동부대 활동지역과 태청산을 답사하다


(제1신) 위대한 조국해방 전쟁 전후 시대의 영광 박막동부대의 활동지역을 답사했다.

2022년 8월 13일에 백수굴수산 까봉을 올랐다.(2박3일)

그리고 활동지역을 답사했다.



이번 답사는 사전의 충분한 답사 과정을 통해 현장확인을 하는 것이다.

이번 답사의 총책임자는 나영선동지인데 아주 영리하고 지혜로운 동지다.

오늘 답사의 주인공인 박막동(박석준)동지는 1929년생이다. 어려서부터 아주 영리하고 지혜로우며 아주 용감한 동지이다.

그래서 주위 인민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박막동부대는 토벌대들이 벌벌 떨 정도로 아주 무서운부대였다

그러기 때문에 9.28후퇴 후 미제를 비롯한 16개 침략군들이 백수면을 장악하려고 총공격을 수차례 전개했으나 거의 6개월 가까이 점령에 실패했었다,

그후 굴수산 까봉은 막동부대가 점령하고 수리봉 상봉은 소위 토벌대들이 점령하여 불꽃튀는 전투가 벌어젔으나 화력과 숫자가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막동부대를 제압하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오두재 및 입석골짝과 월남마을 골짝을 비롯한 까봉및 골작들에는 피난민들과 각기관 단체 비무장 성원들이 잔뜩 있었으나 주어진 실탄이 다 떨어져 더 이상 싸울 수 없어 법성포쪽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1951년 1월 5일경)

토벌대들은 까봉 및 골짝에서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렇게 학살해 후손들이 한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강 1,500명이 학살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까봉과 수리봉 사이가 오두재인데 오두재 넘어에 수백명의 피난민들이 토벌대에 쫒겨 오고가도 못해 갈 곳이라고는 바다밖에 없어 바다물에 빠져죽은 피란민들이 수백명으로 알고 있다

다른 지방에도 민간인 학살지가 많지만 백수와 군서면에도 학살지가 많다


전쟁전, 1948년의 일로, 영광군 염산면에서 군서면 쪽으로 오는 재가 돌파골인데 이 재에서 박막동부대가 매복하고 있다가 경찰대들을 기습하여 전멸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돌파골재가 편편하게 닦여 재로 보이지 않고 있다.

박막동 동지의 전사지와 생가도 답사했지만 지금은 생가가 논으로 되어 벼만 자라고 있었다.

전사지는 군서면 관산로인데 박막동동지를 비롯한 4명이 들어가 있다가 경찰대에 발각돼 전투끝에 2명은 전사하고 2명은 생포당했으며 경찰은 2명이 사살되었다 한다.

박막동 동지는 총을맞고 집 건너편 지금 교회당이 있는 곳에서 전사했다 한다.

놈들은 전사한 박막동 동지의 목을 잘라 영광읍 사거리에 걸어 놓는 만행도 자행했다고 한다.

전남빨찌산 투쟁사에서 소위 토벌대들이 벌벌 떨 정도로 불굴의 백전백승을 떨쳤든 빨찌산 부대로 전남 남태준부대, 장성나정주 8중대, 영광 막동부대로 꼽고 있을 정도로 박막동 부대는 명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오늘날 미제가 76년간 둥지를 틀고 그의 윤석렬 압잽이를 이용하여 대북 핵전쟁군사연습과 참수작전까지 연습하고 있는 이마당에 우리 모두는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치어 미제를 몰아내는 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할 때가 다름아닌 바로 지금 이때라는 것을 굳게 다짐한다.


(제2신) 장성 태청산정상을 점령했다.

2022년 8/14일에 영광대마면 묘량면당이 있었던 대죽마을을 답사하고 산림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태청산 줄기 재인 몰치재를 올라서 상봉을 향해 가는 등산로를 올랐다.

대마면에서 몰치재 넘어가 장성 삼서면이다. 유격투쟁에서 용맹을 떨치었던 장성 8중대가 이 몰치재에서 매복하여 적토벌대들을 격파했던 재이다,

여기서 오늘 합류하는 동지들과 차량을 하산해서 내려오는 길에 놔두고 온 동지들이 합류하여 정상을 향해 올랐다.

등산객은 드물어서 태청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목에 부부가 앉아서 점심을 들고 있었고 삼서서 몰치제를 넘어 대마로 가는 60대 남자 2명을 볼 뿐이다.

태청산 정상에서 추모제를 지내며 한층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이 태청산에는 1949년 겨울에 불갑산 빨찌산 무장부대가 숯구덩이속에 들어가 있다가 적들에게 발각돼 전멸하는 아픈 기록을 남기었다.

이때 불갑산에 있을 때 우리 마을에 내려와 부대장이 밥을 먹으면서 인공기를 수놓아 달라고 우리 누나에게 부탁을 해서 수 놓아서 적들의 압수수색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헛간 지시락에 비장했다가 이것도 마음에 걸려 아예 지시락 울타리 새에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

그 후 인공시절에 파보니 다 썩고 없었다. 그 때 부대장은 인공기를 어깨에 붙이고 있었다.

태청산은 우리 동지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피로 물든 산임을 회고하게 된다.

당시 태청산에는 장성군당부와 유격대, 무안군당부와 유격대, 목포시당 일부와 함평군당부와 유격대, 묘량면당부와 대마면당부와 투쟁인민 그리고 피난민들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태청산 빨찌산 부대중 나정주 8중대가 용맹하게 잘 싸웠다.

그러나 16개 침략군부대의 화력에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태청산에 남아 있는 소수의 인원만 남겨두고 모두 불갑산으로 이동하였다.

묘량면당에서는 입산 피난한 인민들을 적들에게 다 죽게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전전을 통하여 인민들에 자기가 살던 동내로 돌아가 달라고 선전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도 태청산에 입산해 있었는데 우리가 살던 동내로 내려갔다 .

그리하여 우리는 태청산에 오래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1950년 12/1일에 모두 불갑산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태청산에는 소수의 인원만 남아있었으나 그후는 알길이 없었다.

단 대마면당은 가막골로 이동하고 장성 삼계면당과 삼서면당 여맹들이 불갑산 해보면 산내리에 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불갑산과 태청산 빨찌산이 오가는 통로와 함평 해보면에서 묘량면으로 오는 통로인 밀재, 적들의 출장소로 썼든 밀재 주둔지를 답사하였다. 또한 당시에 통로가 막히니 우리동내를 통해 월암리를 거쳐 장안산을 타고 태청산에 오가고 하였는데 적들은 또다시 우리 마을 앞 건너편 동내인 내촌마을 뒷산에 삼학출장소를 지어 통로는 막는다고 했었던 그 출장소를 답사했다.

그러니 우리 묘량면에는 지서외에 출장소가 3군데 있었다. (1956년까지 )

우리 답사팁은 오후에 민간인 학살지를 답사하였다.


이날 저녁식사는 낮에 합류한 윤병구동무의 알선으로 영광농민회가 거액을 지출하여 푸짐하게 잘 들었다. 이 글을 통해 고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이외에 답사한 곳이 많이 있으나 다른 분들에게 맡기고, 다음 답사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다 하자고 총화에서 나누었다. 2박3일동안 수고 많이들 했습니다. 서울 투쟁일정에 맞추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Total 9,476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한시애틀을 모략한 동아일보는 사죄하라! (4) 강산 08-01 156240
공지 통일운동은 북을 바로 아는 것이 그 시작이다 (12) 강산 05-25 166960
공지 훈민정음 서문 현대어로의 번역 (3) 김박사 12-31 164574
9476 별의 세계 3 강산 03:59 34
9475 장편소설 별의 세계 2 강산 09-28 46
9474 <김성 유엔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강산 09-28 69
9473 장편소설 별의 세계 1 (1) 강산 09-27 65
9472 [분석] 핵전투 부대들이 진행한 선제전술핵타… 강산 09-26 180
9471 [김웅진 칼럼]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 외 강산 09-23 259
9470 [이적 칼럼] 인민군 묘역에서 외 강산 09-21 123
9469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60 마지막 회 (1) 강산 09-21 222
9468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9 강산 09-20 116
9467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8 강산 09-19 220
9466 [류경완의 국제평화뉴스] 《The Hill "미국, 지… 강산 09-19 254
9465 [분석] 제2차 ‘남조선해방전쟁’ 연기 기간 … 강산 09-18 147
9464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7 강산 09-18 225
9463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6 강산 09-17 165
9462 [김영승 칼럼] 금선사에 안치된 신념의 강자 … 강산 09-16 70
9461 라남의 열풍 55 강산 09-16 225
9460 중국 ‘인민대표대회’의 역사(제1회) 강산 09-16 215
9459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4 강산 09-15 186
9458 새로 창작된 선전화로 보는 조선의 오늘 강산 09-14 95
9457 [김웅진 칼럼] 인류를 기만하는 범죄자가 된 … (1) 강산 09-14 152
9456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3 강산 09-14 144
9455 비극 드라마와 같은 미국의 외교 강산 09-14 176
9454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2 강산 09-13 234
9453 [분석]핵무력 정책 입법과 영토 완정의 법적 … 강산 09-12 352
9452 [김영승 칼럼] 금선사에 안치된 신념의 강자 … 강산 09-11 81
9451 [김영승 칼럼] 금선사에 안치된 신념의 강자 … 강산 09-11 88
9450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1 강산 09-11 135
9449 이것이 북과 남의 차이이다​ - 평양의 경루… 강산 09-11 265
9448 "아직도 소원은 통일입니까?"에 대한 해답, "… 이흥노 09-10 143
9447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0 강산 09-10 222
 1  2  3  4  5  6  7  8  9  10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수집거부  |   온라인문의
    Copyright © www.hanseattle.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