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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2-21. 꼬뜨디봐르, 또 하나의 미국-프랑스가 일으킨약소국의 내전   22-07-06
강산   437
 

꼬뜨디봐르, 또 하나의 미국-프랑스가 

일으킨약소국의 내전


고 류태영 박사

 

2011년 새해의 첫날부터 세계의 주요뉴스는 서아프리카의 나라들중의 하나인 꼬뜨디봐르의 내전에 대한 기사들을 계속하여 보도하였다.

꼬뜨디봐르라는 나라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상아》를 의미하는데 지난날 이곳에서 식민주의자들이 상아를 많이 략탈해간데로부터 유래되였다.

하지만 미국은 그후에 미국식으로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라고 고쳐불렀는데 역시 《상아》라는 이름은 그대로 놓아두었다. 침략자들은 이렇게 약소국들의 나라이름까지도 제멋대로 만들어 부르는것이다.

꼬뜨디봐르의 오랜 내전과정에 각이한 세력들이 웨친 구호는 매우 혼란스럽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오늘 《프랑스의 신식민지정책을 모두 함께 반대하자》라고 웨치는 반정부세력과 함께 대통령을 지지하는 남쪽의 여당과 집권세력도 역시 똑같은 내용의 구호인 《프랑스의 내정간섭을 반대하며 외세는 물러가라》를 크게 웨치고있는것이다.

서로 대치하여 내전을 벌리고있으면서도 량편이 똑같은 내용의 구호를 웨치고있으니 이게 웬 일인가?

그 원인과 리유를 리해하기 위하여 꼬뜨디봐르력사의 심층을 고찰해본다.

 

프랑스의 꼬뜨디봐르 식민지통치와 독립

 

32만 2 453㎢의 면적을 가진 꼬뜨디봐르는 인구의 30%가 주로 북쪽의 이슬람교도이고 10%는 남쪽의 그리스도교도들이다. 이 종교적인구분포로 인하여 북과 남이 서로 대립되여있다.

또한 현재 꼬뜨디봐르에는 이웃의 여러 나라들에서 들어온 많은 이주로동자들이 살고있는데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26%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러한 리유로 남쪽의 그리스도교측에서는 이주로동자들에 대하여 거센 반감을 가지고있으며 이것은 하나의 사회정치적문제로 비화되고있다.

꼬뜨디봐르는 코코아, 커피생산이 세계3위이며 코코아수출은 세계1위이다.

그외에도 금과 석유, 바나나, 고무와 목재 등을 수출한다.

1970년대에 남쪽 해저에서 2곳의 유전이 발견되였으며 1980년대부터 원유를 생산하여 수출하고있다. 적도에 위치한 열대지방의 원시림속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진귀한 야생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있다. 이처럼 꼬뜨디봐르는 아프리카나라들중에서 자연부원이 풍부한 나라로 알려져있다.

15세기부터 유럽침략자들은 이 일대에서 나는 귀중하고 진귀한 자원에 눈독을 들이면서 접근해왔다.

17세기에 프랑스는 꼬뜨디봐르에 상아무역기지를 꾸려놓았으며 19세기에 이르러 이곳에 서아프리카침략의 요새를 구축하고 영국을 대항하여 싸우면서 노예무역에 주력하였다.

1870년에 있은 프랑스-도이췰란드전쟁으로 인하여 프랑스군이 한때 철수했지만 이 지역에서 도이췰란드, 영국, 프랑스 세 나라는 상아에 대한 리권을 놓고 서로 치렬하게 대결하고있었다.

그후 꼬뜨디봐르는 1904년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였으며 1958년에 프랑스공동체안에서 한개 자치주로 되였다.

프랑스가 취한 이와 같은 조치는 선의에 의해 취해진 조치가 아니였으며 시대적변화에 따라 할수없이 취한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는 꼬뜨디봐르해안에 상륙한 이후 수백여년동안 식민지통치를 해오다가 결국 꼬뜨디봐르에서 떠나가야만 할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부터 아프리카의 모든 식민지나라들은 앞을 다투어가면서 제각기 해방과 독립국건설을 위하여 일제히 분발하고 투쟁에 나서고있었다.

1946년 10월에 서아프리카 말리에서는 서아프리카독립운동가들 수백명이 모여 독립운동련합체를 결성하고 꼬뜨디봐르의 후푸에 브와니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당시 아프리카커피생산조합의 대표로 있던 후푸에 브와니는 시대적요구에 재빠르게 부응하여 꼬뜨디봐르민주련합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민족적독립을 위한 투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1960년 8월 마침내 꼬뜨디봐르는 프랑스공동체안에서 독립을 이룩하게 되였다.

 

후푸에 브와니대통령의 친프랑스통치

 

독립후 꼬뜨디봐르의 초대대통령으로는 후푸에 브와니가 취임하였다.

그러나 후푸에 브와니대통령은 옛 종주국인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고 외세의존적인 정치를 실시하였다.

그것을 형태별로 보면 대체로 이러하다.

후푸에 브와니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꼬뜨디봐르의 풍부한 자원인 카카오, 커피, 목화의 생산과 수출을 전적으로 프랑스위주밑에 관리하고 진행하였다. 하여 프랑스는 식민지통치시절과 조금도 다름없이 꼬뜨디봐르를 지배하면서 수출의 3분의 1정도를 독차지하고있었다.

브와니대통령은 33년동안 집권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고 했으나 경제적목표달성을 구실삼아 빈곤한 이웃나라들로부터 자기 나라에 인구의 26%에 해당되는 로동자들을 대량 이주시켜 꼬뜨디봐르를 외국인출신들이 혼합된 나라로 만들었다. 미래에 부딪칠 인종문제와 외국인대우문제 그리고 빈부격차의 문제에 대하여서는 캄캄한 소경이였던것이다.

외세의존적인 정책하의 33년동안에 꼬뜨디봐르의 물, 전기, 건설, 통신, 교통 등 거의 모든 산업분야가 프랑스기업에 의해 독점당하게 되였다.

꼬뜨디봐르의 가장 큰 자원인 카카오재배는 세계 43%를 차지하고 수출은 세계1위이다.

하지만 무리한 재배확장과 수출증가로 인하여 자원의 고갈과 열대림의 파괴는 큰 재난을 예고하고있었다. 브와니대통령의 집권기간 매해 년간 45만ha의 토지가 파괴되였으며 이제는 꼬뜨디봐르의 자원고갈이 위험수준에 이르고있다고 한다.

브와니대통령의 집권 마지막해인 1993년당시 꼬뜨디봐르는 IMF에 158억US$의 막대한 빚을 지고있었는데 그후 경제는 엄중한 위기에 처해있다.

브와니대통령은 집권기간 정치적안정도 이룩하지 못하였다. 집권기간 여러차례의 정부전복기도와 대통령을 노린 암살미수사건들이 있었으며 정부를 반대하는 대중적인 시위와 파업들이 련이어 일어났다.

이처럼 브와니대통령은 장기간의 집권기간 꼬뜨디봐르에 어두운 그림자만을 남겨놓았다.

 

그바그보대통령의 등장과 내전

 

브와니대통령이 사망하자 당시 국회의장이던 앙리 베디에가 그 후임으로 되여 2년 남은 대통령임기를 채웠다.

그후 앙리 베디에는 1995년에 다당제선거를 실시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되였다.

하지만 그는 1999년 12월에 발생한 쿠데타에 의해 정권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였으며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인 로베르트 구에이가 과도정부를 수립하고 대통령으로 되였다.

로베르트 구에이는 곧 민정이양을 위해 민선대통령선출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꼬뜨디봐르의 불행의 싹이 바로 이 민선대통령선거전에서부터 움트기 시작하였다.

당시 민선대통령선거에는 3명의 후보자가 등장하였는데 첫째는 쿠데타의 주동자인 로베르트 구에이 현직대통령이였고 둘째는 이바르인민당의 후보자인 로랑 그바그보였으며 셋째는 전 수상이며 북쪽이슬람교세력을 배경으로 하고있는 알라싼 데 우아따라후보자였다.

그런데 이 후보자들중에서 가장 유력시되는 후보자는 북쪽의 이슬람교세력을 배경으로 하는 전직수상인 알라싼 데 우아따라였다.

이것을 파악한 후보자는 바로 로랑 그바그보였다.

그래서 알라싼 데 우아따라를 자기의 주요경쟁대상으로 삼은 로랑 그바그보는 알라싼 데 우아따라의 자격문제를 들고나왔다.

그바그보가 제기한 이 자격문제란 순수한 꼬뜨디봐르의 조상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만이 대통령후보자가 될수 있다는 주장으로서 만일 부모중에서 한사람만이라도 순수한 꼬뜨디봐르인혈통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대통령후보자의 자격은 상실된다는것이였다.

그런데 브와니 전임대통령의 집권기간 많은 외국인로동자들이 들어온탓에 량부모의 조상이 순수한 꼬뜨디봐르인의 혈통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므로 그바그보후보자가 《량부모의 순수한 꼬뜨디봐르인혈통》을 주장하는것은 사실상 하나의 억지주장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억지주장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알라싼 데 우아따라후보자는 자격상실되여 떨어져나가게 되였다.

결국 2000년 10월 20일에 치르어진 꼬뜨디봐르대통령선거는 그바그보와 로베르트 구에이의 량자대립의 선거가 되였으며 그바그보가 로베르트 구에이를 쉽게 물리치고 당선되게 되였다.

그런데 그바그보가 집권한 2000년부터 지금까지 꼬뜨디봐르사회에서는 《누가 진짜 꼬뜨디봐르인인가?》라는 문제제기로 인하여 계속 잡음이 울려나오고있다.

 

그바그보대통령의 집권행태 무엇이 문제인가?

 

원래 꼬뜨디봐르의 북부지역은 땅이 척박하여 농업이 어렵고 가난한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이다. 이와 반면에 남쪽은 열대수림이 무성하여 카카오, 커피, 목화 등이 풍부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슬람교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이들에 대하여 남쪽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종교적인 리유를 들어 박대하고 정치적으로 2등국민취급을 하였다.

북쪽이슬람교계통의 주민들은 이에 몹시 분개하고있으며 그러한 분노는 이슬람반군을 조직하여 남쪽의 그리스도교정부와 무력충돌을 일으키는데까지 이르렀다.

2002년에 북쪽 반군은 수도인 아비쟝까지 진격하여 꼬뜨디봐르 전역을 장악할 정도로 강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당황한것은 물론 그바그보대통령이지만 프랑스도 몹시 다급해져서 곧 군사적으로 개입해나섰다. 2003년에 프랑스군의 개입과 중재로 전투는 중지되였지만 북과 남의 분렬은 더욱 심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2004년 3월에 수도 아비쟝에서는 반정부시위가 대대적으로 발생하여 120명이 숨지는 류혈사태가 발생하였는데 서방을 편드는 유엔은 8 000명의 병력을 급파하여 치안군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사실 이 병력은 유엔이라는 명분을 가지였을뿐 실제로는 프랑스군 8 000명이 꼬뜨디봐르에 주둔한것이였다. 여기에 다국적평화유지군을 합하면 1만명의 외국군대가 꼬뜨디봐르에 주둔하고있는셈이다.

2000년 10월에 집권한 그바그보대통령의 임기는 2005년 10월까지지만 그바그보는 내란을 핑게삼아 재선과정을 거치지 않고 계속 집권하고있다.

임기가 끝난데도 불구하고 버티고 서서 집권하고있는 그바그보대통령. 그는 영웅인가, 폭군인가?

그런데 놀라운것은 외세를 반대하는 웨침이 북쪽뿐아니라 남쪽의 그바그보대통령진영에서도 크게 터져나오기 시작한것이다.

이에 당황한 외세는 유엔을 내세워 꼬뜨디봐르로 흘러들어가는 모든 무기들을 차단할데 대한 결의를 채택하도록 하였다.

사실 그동안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방에서 많은 무기들이 그바그보 대통령진영에 보급되고있었던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였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1999년에 로베르트 구에이가 일으킨 쿠데타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전기간에 서방을 통하여 꼬뜨디봐르로 흘러 들어온 무기는 약 300만정이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서방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휴전협정과 평화결의안의 채택만 반복하고있을뿐 실제로는 경쟁적으로 무기장사를 하여 오히려 분쟁을 더욱 격화시켜왔다는것을 의미한다. 이통에 약소국들만 이래저래 희생을 당하고있다.

그러한 가운데 2007년 3월 4일 부르끼나파쏘대통령의 중재로 와가두구평화협정이 어렵게 성사되였다.

이 협정에 따라 2007년 3월 29일 그바그보대통령은 반군지도자 쏘로를 정부수상으로 임명하였으며 8월 전쟁종결선언을 발표하였다. 또 선거관리위원회도 조직하였다.

그러나 당장 위기를 면했을뿐이고 반군의 무장해제는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국토의 절반인 북쪽에서 그바그보대통령의 통치권은 전혀 행사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반군지도자 쏘로의 정부수상임명도 얼마후에 취소되고말았다.

2008년에 들어서서 선거관리위원회안에서도 인원구성문제로 하여 마찰이 일어났으며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혼돈만 또다시 재현되였다.

 

그바그보대통령 퇴진?, 망명? 기로에서 헤맨다

 

지난 2010년 11월 28일에 꼬뜨디봐르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였다.

대통령후보자는 그바그보 현 대통령과 전 수상 알라싼 데 우아따라 두사람이였다.

알라싼 데 우아따라로 말하면 2000년 10월에 있은 대통령선거때 후보자로 출마했다가 그바그보가 제기한 자격문제의 희생양이 되여 후보자에서 탈락되였던 인물이다.

그런데 2010년 11월 선거전에서는 그바그보대통령이 또다시 자격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알라싼 데 우아따라를 대통령후보경쟁자로 인정하였다.

선거결과 선거관리위원회는 알라싼 데 우아따라가 54. 9%를 획득하여 당선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바그보 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와 군부를 등에 업고 이 발표를 부정하면서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였다.

결국 꼬뜨디봐르에서는 두명의 대통령이 저마다 12월초에 취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정치정세속에서 우아따라 전 수상을 지지하는 민중들의 시위가 일어났으며 정부군이 폭력으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 백수십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국외로 피난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바그보정권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게 되였다.

사태가 이렇게 번져지자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세력들은 지금까지 지지해오던 그바그보정권에 완전히 등을 돌려대고 그바그보가 물러날것을 요구해나섰다.

그러자 그바그보대통령은 지금까지 미국과 프랑스에 리용만 당해오다가 정작 어려움에 처하니 완전히 배신당했다고 하며 분통을 터뜨리였다.

그러나 이것은 외세의존적인 정권앞에 차례지는 응당한 대접이고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꼬뜨디봐르의 실례는 분쟁과 대립, 빈궁에서 벗어나 나라의 정치적안정과 번영을 이룩해나가는 길은 오직 자주의 길뿐이라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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