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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20   22-01-15
강산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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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농산 제5작업반


19


농산 제2작업반장 최윤구는 관리위원장이 녀성인것으로 하여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왜 그런지 녀성들과는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성미인데다가 명숙이가 세밀하고 파고들며 따지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5작업반에서 지원로력을 받지 않고 작업반자체로력으로 모내기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장석이 환장을 했나?》 하고 중얼거리며 윤구는 이마살을 찌프리였는데 마장석의 그러한 모험을 관리위원장이 뒤에서 떠밀었을것이 뻔했기때문에 결국은 명숙이의 처사에 불만을 나타낸것이였다.

그런데 뒤떨어졌던 5작업반이 차츰 실적을 올리며 앞서나가고 자기네 2작업반이 대신 꼴등으로 떨어지자 윤구는 다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명숙은 2작업반으로 나갔다.

《반장동무 어디 있어요?》

넓은 벌판의 2작업반 논에 이른 명숙이가 모내는기계에 모공급을 하고있는 처녀에게 물었다.

《모판에 있을겁니다.》

처녀의 대답이다.

모판에 가있을수 있었다. 지원로력이 벌을 덮었으니 조직사업과 보장사업이 분주할것이다. 분조장들도 논판에 들어설 틈이 없다. 넓은 벌에서 농장원들보다 몇배나 되는 지원자들이 와와 떠들고 웃으며 자를 뒤로 옮겨 전진하면서 손으로 모를 꽂고있었다.

농장원들은 다른 논배미에서 모내는기계로 모를 내고있다. 모내는기계와 논써레를 치는 뜨락또르의 동음이 들바람에 실려왔다. 뜨락또르로 써레를 치고있는 곽철수의 모습이 안겨왔다. 철수는 농업대학 통신학부에 입학하였다.

그는 관리위원장을 알아보았는데 검실검실한 얼굴에 쾌활한 웃음이 넘실거리였다.

명숙은 손을 흔들어주고 2반장 윤구를 찾아 보뚝길로 나섰다. 벼모들이 충실한지, 빈포기들이 얼마나 생기는지, 지내 깊이 꽂거나 얕게 꽂지는 않는지 등등 살펴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는데 빈 소달구지가 등뒤로 지나가는것이였다. 덜커덩거리는 빈 달구지가 젖어있고 벼모들이 더러 붙어있는것을 보니 모춤들을 날라다 부리우고 다시 모판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소달구지를 몰아오던 달구지군이 농립모를 쓴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관리위원장, 안녕하시우?》

농립모의 그늘이 진 길고 좁은 얼굴에서 작은 눈이 명랑하고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고있었다. 《꽉쇠》로 불리우는 곽기춘이였다. 곽철수의 아버지다.

《안녕하십니까?》

명숙이 인사를 받았다.

《마을루 들어가시오?》

《예, 반장을 찾아 모판으로 갑니다.》

《와- 와-》 곽기춘은 달구지를 세우고 말했다. 《그럼 올라앉으시우. 내가 모셔다드리겠소.》

명숙은 명랑하게 웃었다.

《아버님두!》

《아니, 롱이 아니외다. 빈 달구지루 갈게 있소. 내가 보느라니까 관리위원장이 늘 벌판에 나와다니던데 달구지와 맞다들었으니 좀 타고가며 다리쉼을 하우.》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고맙지만 이 황소를 보세요. 엉치뼈가 솟아오른걸!》

곽기춘은 소고삐를 주무르며 잠시 말이 없었다.

《하긴 옳소.》 그는 황소에게 호령했다. 《가자.》

달구지가 움직이자 그는 옆에서 따라걸었다. 명숙은 반대쪽으로 가서 황소와 달구지를 사이에 두고 그와 같이 걸었다.

곽기춘이는 생긴것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도고한 인품이 사람을 끌었다. 그래서 명숙은 아버님이라고 존대하며 부르게 되였다.

곽기춘은 확실히 다른 늙은이들과 다른데가 있었다.

《관리위원장말이 옳소. 이 황소의 꼴이 말이 아니요.》

곽기춘이 심중하게 말했다.

《소를 왜 이렇게 먹입니까?》

《작업반소우리에서 먹이는데 이 꼴이요.》

《그러면 안되겠는데요.》

《더 말해 뭘하겠소.》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달구지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벌판의 뜨락또르와 모내는기계소리, 지원자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관리위원장.》

곽기춘이 입을 열었다.

《그래두 나를 아버님이라구 불러주는 사람은 관리위원장이요. 지금 어디 늙은이를 존경합니까? 〈령감〉, 〈곽령감〉, 〈꽉쇠령감〉 나를 이렇게들 부르우.》

명숙은 밝게 웃었다.

《그건 아버님을 친근하게 부르느라구 그러는겁니다. 제 경우에는 녀자니까 〈령감님〉이라구 못 부르지요, 호호…》

그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에 퍼지였다.

《아니, 그래서만이 아니요. 내 가만 보니 관리위원장은 농장원들과 가까운것 같소. 농장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것 같단 말이요.》

《그거야 관리위원장이면 응당…》

곽기춘이 그의 말을 잘랐다.

《내 말을 마저 듣소. 나는 내가 말을 할적에 막아치우거나 듣지 않는게 제일 싫소. 기사장처럼 심중하게 듣는척 하고는 곧 잊어버리든지 무시해치우는건 더욱 싫어하오. 사람들이 이 곽기춘의 말을 왜 듣기 싫어하는지 모르겠소. 아마 새 관리위원장두 내가 이제부터 말을 하면 싫어할게요.》

명숙은 잠자코 있었다. 막지 않는 한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리라는것이 뻔했다.

《듣다가 싫으면 그만하라구 말하오.》

곽기춘은 여전히 찌뿌둥한 얼굴이였다.

《이전 관리위원장얘긴데, 일을 잘했지요. 그리고 농장원들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고 도와주니 모두 따랐지요. 그런데 흠이 좀 있었소. 나이들어가면서 인심이 지내 후해지구 늘 들판에 나가있으면서 관리위원회 내부를 틀어쥐지 못했소. 그러니까 못된것들이 살아나구 규률과 질서가 문란해졌소.》

명숙은 그의 말을 심각하게 들었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으니 이전 관리위원장에게도 결함이 있었겠지만 관리위원회 내부를 틀어쥐지 못해 규률과 질서가 문란해졌다는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곽기춘의 이야기가 근거없는 소리 같지 않았다. 얼마전에 명숙은 기회가 생기자 부기실에 대한 검열을 하였다. 이 검열과정에 곽기춘이 말한것처럼 농장 공동재산을 침해한 사실들이 적지 않게 밝혀졌다. 검열결과를 총화하는 모임에서 부기장이 진땀을 뺀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관리일군모두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곽기춘이 계속했다.

《질서와 규률이 해이되니 재간껏 농장재산에 손을 대게 됐고 농사에 힘을 넣지 않았지요. 지원자들에 거의 의거하다싶이 했소. 지금 지원로력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것으로 알고있게 됐소. 저것을 좀 보시오.》

그는 들에 널린 지원자들을 가리켰다.

《지원자들이 주인같지 않소? 농장원은 어디 뵙니까? 농장원들은 모내는기계루 하는것밖에 있소? 하기야 지원로력이 가득 왔으니까 그들에게 조건을 보장해주는 조직을 해주느라 뛰여다니지 않을수 없지요. 결국은 주인이 바뀌였소. 헌데 지원로력이야 사실 손님이지요.》

명숙은 곽기춘이 5반의 강현이와 같은 견해를 내놓는것이 더없이 기뻤다.

《말씀을 다 하셨습니까?》

《내 얘기는 종일 해도 끝이 없소. 하지만 마을에도 다 왔으니 서론으루 그칩시다.》 하며 그는 벌씬 웃었다. 그는 관리위원장이 자기 이야기에 심취된듯 주의깊게 들어주니 만족스러웠던것이다.

《그러면 제가 하나 물읍시다.》

《예.》

《작업반에서 농장원들자체로 모내기를 할수 있습니까?》

명숙이가 논판의 지원자들을 보며 물었다.

《5반에서는 하고있지 않소?》

《2반을 묻는겁니다.》

《왜 못하겠소? 아까 말한것처럼 지원로력이 없이는 모내기를 못하는것처럼 인식하고있구 쉽게 해먹으려 하기때문이지요. 5반처럼 하자면 머리를 써야 하구 뛰여야 하니까.》

《2반장동무는 일군인것 같던데요. 말보다 행동을 더 하는 실농군이 아닙니까.》

곽기춘은 싱긋 웃으며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이게 돌지 않습니다.》

어느새 모판에 다왔다. 과연 거기에 키가 꺽두룩한 윤구가 지원로력책임자로 보이는 새 농립모를 쓴 사람과 무엇인가 토의하고있었다. 모판에도 지원로력이 한벌 깔렸다.

명숙은 곽기춘이에게 앞으로 종종 찾아와 유익한 얘기를 많이 듣겠다고 했다.

《내가 뭐 아는게 있소. 그래두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니 좀 뜻밖이요.》 하며 곽기춘은 모판으로 달구지를 몰고들어섰다.

명숙은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이 그저 인사로 한것이 아님을 알수 있었다. 아들 철수도 말했지만 작업반에서는 곽기춘의 옳은 충고를 시끄러워하며 잔소리로 친다고 한다. 그리고 곽기춘을 고집이 세다고 《꽉쇠》라 부른다. 성이 곽가인데다가 한번 옳다고 주장하면 끝까지 내미니까 그런 별명이 붙은것 같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확실히 곽기춘은 유식했다. 3대명물에 속한다는것이 그저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씨먹은 소리를 하기때문일것이다.

2반장 윤구를 만났다. 윤구는 농장원들이 아침일찍 나와 모내기에 들어가기 전에 한사람이 모를 한판씩 뜨는데 지원자들은 종일 한사람이 한판을 뜬다고 두덜댔다.

《그래서 지원로력책임자한테 의견을 내니까 사무원들이니 어쩌겠는가, 하여튼 사상동원을 해서 더 뜨도록 하겠다, 이럽디다.》

명숙은 흰 이를 반짝이며 웃음을 지었다.

《지원로력을 받지 않는게 낫지 않겠어요?》

《그럼 모내기를 어떻게 하겠소? 한사람이 하루 한 판대기를 떠두 그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명숙은 모를 뜨는 지원자들을 가리켰다.

《저 숱한 지원자들을 조를 나누어서 농장원 한명씩 붙어 일하는데 그렇게 지원자들을 맡아서 같이 일하는 농장원들을 〈지도농민〉이라고 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윤구가 큰 입을 쩍 벌리고 껄껄 웃었다.

《웃어요?》

《웃지 않으면 울갔소? 허허…》

명숙은 래년도에는 다른 작업반들에서도 지원로력없이 자체로 모내기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농립모를 쓴 새 작업복을 입은 청년이 명숙에게로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 명숙은 이 미끈하게 생기고 체력이 좋은 청년을 어디서 꼭 본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정쩡해있는데 청년이 그 눈치를 채고 자기 소개를 했다.

《군경영위원회 지도원입니다.》

생각났다. 경영위원회에 가서 본것 같다.

《예, 글쎄 낯이 익다 했지요. 난 여기 온지 반년도 채 못돼서…》

명숙이 좀 미안해했다.

《나 역시 군경영위원회에 배치받은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디 있다 오셨게요?》

《제대되여 곧바로 농업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여기 배치를 받아왔습니다.》

《그랬군요. 많이 도와주세요.》

청년은 얼굴을 붉혔다.

《햇내기가 무슨 도움을 주겠습니까. 전 관리위원장동지에 대해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도원동무, 마침 잘 왔어요. 그러지 않아도 군에 지원로력과 관련한 저의 의견을 내려고 했어요. 먼저 2반장동무의 말을 들어봐요.》

키가 큰 윤구가 지도원과 인사를 나눈 다음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도원은 심중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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