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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2-6. 꽁고, 친미반군의 만행으로 급해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21-11-19
강산   941
 
저자 고 류태영 박사


2. 아프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침략과 력사적교훈

 

□ 꽁고, 친미반군의 만행으로 급해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강대국에 시달리고 착취당해온 《꽁고민주주의공화국》, 세계굴지의 지하자원부유국으로 알려졌지만 가장 가난한 나라로 평가되고있다. 이 나라에서는 46년만에 민주선거로 조세프 까빌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여 그의 향방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있다.

아프리카의 꽁고는 과연 어떤 력사를 걸어왔는가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려고 한다.

꽁고는 한 나라가 아니라 두 나라이다. 하나는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꽁고공화국》이다.

꽁고는 14세기부터 500년간 《부족왕국》의 력사적전통을 가지고있는 단일국가이지만 1800년대에 들어서서 꽁고강을 경계선으로 서쪽에는 《프랑스식민지》가 들어섰고 동쪽에는 《벨지끄식민지》가 설정된 비극으로 인하여 꽁고의 운명은 두개의 나라로 갈라지는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이 나라는 한세기가 헐씬 넘어선 시기인 1960년에 와서야 독립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은 아프리카나라들 대부분이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시기라고 하여 그때를 가리켜 《아프리카독립의 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그 시기에 분렬된 두개의 꽁고도 프랑스와 벨지끄의 식민지통치로부터 각각 독립을 쟁취한다.

꽁고강 동쪽에 있던 《벨지끄령 꽁고》는 1960년 6월 30일에 독립을 쟁취했고 서편에 있던 《프랑스령 꽁고》는 1960년 8월에 독립을 쟁취했다. 두달 늦게 독립을 쟁취한 그 두달의 차이때문에 꽁고는 두개의 독립국으로 분렬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 두달이 영원한 두달이 될줄은 아무도 상상할수 없었다.

강건너 서편 《꽁고공화국》은 동편의 《꽁고민주주의공화국》에 비교도 안되는 작은 령토였다. 면적으로는 8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400만명이다. 언어는 프랑스식민지유산으로 지금도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있다.

한편 강 동쪽에 있는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은 그 면적이 234만 5 408㎢로 서유럽전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세번째로 큰 나라이며 조선반도로 따지면 약 11배가량 되는 큰 령토이다. 인구도 《꽁고공화국》에 비해 15배가량 많은 6 200만명(2007년 통계)으로 집계된다. 프랑스와 벨지끄 두 주인을 섬겨야 했던 가슴아픈 식민지력사와 그리고 독립후에는 분렬과 내전으로 피투성이가 되고있는 비극적인 오늘의 력사를 꽁고인민들은 꽁고강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다보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뼈저린 기억들을 속절없이 흘러보내고있다.

 

 

      꽁고의 비극의 시작

 

15세기에 유럽의 《항해시대》가 열리고 1482년에 뽀르뚜갈인 디오고 캉이 꽁고강의 하구에 이르러서 주민들에게 접근한 기록이 있다. 그 당시 꽁고지역에는 콩골로라는 한 무사가 정부를 수립하여 《꽁고왕국》을 세웠다. 꽁고왕은 처음에는 뽀르뚜갈인과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나 노예무역이 본격화되자 유럽인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하지만 꽁고왕의 지배하에 있던 소왕국간의 협력이 쇠퇴해지고 서방의 침략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꽁고왕은 하는수없이 서유럽인들의 식민지진출시대를 막을수 없게 되였다.

1870년에 와서 프랑스탐험가 P. S. 부라자가 꽁고강류역을 탐험하고 바테계족 추장과 협정을 맺고 꽁고강 서쪽연안에 《프랑스ㅡ꽁고식민지》를 세우고 그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기에는 이 지역을 프랑스해외령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1958년에 와서는 프랑스공동체안에 속하는 꽁고자치공화국으로 만들었다.

프랑스는 꽁고땅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쓰다가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라 할수없이 1960년 8월 15일에 꽁고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한편 꽁고강 동쪽연안에 있던 벨지끄의 식민지통치령토에는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이 창설된다. 이 지역의 력사를 보면 1878년 벨지끄 국왕이 영국계미국인 스탠리의 아프리카횡단탐험을 적극 지원해주고 그 대가로 아프리카에 대한 자료를 입수하고 또 그를 통해서 꽁고강 동쪽류역에 벨지끄기지를 설치하도록 구상하였다.

벨지끄의 왕은 기지를 확보한 다음 《국제꽁고협회》를 조직하고 꽁고지방 수장들과 조약을 맺음으로써 꽁고강 동쪽연안에 벨지끄령 꽁고식민지통치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1884년에는 꽁고식민지통치를 국제적으로 합법화하기 위하여 미국의 승인을 먼저 획득하고 그다음 1885년에 《베를린 아프리카회의》에서 유럽렬강들로부터 《꽁고는 벨지끄의 사유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순을 밟는다.

20세기에 들어서서 벨지끄는 꽁고를 식민지로 만들어놓고 고무, 상아, 야자유 등을 수입하기 위하여 꽁고인들을 노예로 동원하여 야만적인 로동력착취를 감행하였다. 벨지끄의 로동력착취와 야만적침략행위는 꽁고인들의 분노를 불러왔다.

그런데 유럽의 작은 나라인 벨지끄가 자기 땅보다 77배나 큰 거대한 꽁고식민지를 혼자 통치하기에는 힘이 딸릴뿐만아니라 인구마저 희박한 광활한 땅을 개척하는것은 간단치 않았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벨지끄의 식민지령에는 영국과 미국의 자본이 들어오게 되였고 이 지역은 점차 이들 미국과 영국의 경제식민지로 서서히 변화되게 되였다. 미국과 영국은 이웃나라인 르완다, 부룬디 등 식민통치령에서부터 많은 로동력을 꽁고에 투입시켜 농업과 광업분야에 잠식하면서 경제적지배구조를 착수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하면서 미국과 영국은 경제개발사업에 투입된 꽁고인들에게 강제적으로 그리스도교신봉과 함께 생산성향상을 위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면서 광대한 땅에 직선을 그어놓고 그 직선에 따라 지역을 구분하는 정책을 설정하였다. 이와 같은 정책으로 인하여 강제로 만들어진 지역들에서는 자연히 지역간 분쟁이 일어날수밖에 없었으며 그 분쟁은 미래의 분쟁의 씨앗이 되고만다.

이런 과정에서 1921년 꽁고인민들이 조금씩 력사의 눈을 뜨게 된다. 대중속에서 유럽문명과 그리스도교선교사배척운동이 태동하면서 그것은 서서히 민족자주운동으로 성장한다.

아프리카전역에 독립의 물결이 파도치고있던 1960년대에 들어와 꽁고사람들은 벨지끄인들에게 《이제는 물러가라.》라고 웨치기 시작하였고 반외세민족자주운동이 움터났다. 그 결과 1960년 6월 30일에 벨지끄는 할수없이 꽁고국민들의 독립요구를 승인하고 꽁고를 떠나게 된다. 외세가 꽁고에서 철수했지만 꽁고강을 두고 두 세력으로 분렬되였던 량진영은 《꽁고공화국》과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을 창건하여 결과 두개의 나라로 되고말았다.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의 발자취

 

꽁고강 동쪽연안의 꽁고력사는 85년동안 벨지끄의 식민통치를 받아오다가 1960년 6월 30일에 독립했지만 오랜 외세의 지배로 인하여 전체 대중의 교육수준은 낮으며 또한 과거의 지역간 분쟁으로 인하여 조성된 사회적불안과 혼란은 자주독립국가를 새로 건설해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허다한 문제들을 안고있었다.

이 지역에서 독립직후부터 5년동안을 《독립초기 동란시기》로 볼수 있다. 동란의 내용은 조세프 카사부부, 루뭄바총리, 모부트장군, 촘베총리, 까빌라반군 등이 서로 대결한 내분의 시기로서 다섯사람들의 권력쟁취를 위한 다툼이 치렬하게 전개된다.

이 내분은 또다시 외세를 불러들인다. 그래서 1961년에 분파들의 싸움이 극심해지자 벨지끄군이 자동적으로 개입하고 미국은 유엔군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유엔평화유지군은 꽁고의 평화를 위해서 공정한 역할을 하기보다는 미국의 립장을 지지하는 편에 서서 일방적인 역할만 한다. 그러다가 1964년에 유엔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꽁고를 떠나갔고 벨지끄군도 철수했다.

1965년 11월에 모부트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수반의 자리에 앉음으로써 5년동안의 동란은 일단 끝났다. 1967년에 모부트장군은 《혁명인민운동》을 창설하고 1당제체제를 만들어놓고 1970년에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여 100% 지지를 얻어 군복을 벗고 민간인자격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모부트대통령은 취임후 5년동안의 비상상태를 선포하고 독재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정치로선을 선택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나라이름을 꽁고가 아니라 《자이르공화국》으로 고치고 꽁고강을 자이르강이라고 부르도록 하였을뿐만아니라 국기도 바꾸었다.

카톨릭교회의 전통적세례명을 금지시켜 부르지 못하게 할 정도로 벨지끄의 식민통치의 잔재를 일소하기 위하여 온갖 법률들을 다 뜯어고치도록 강권을 발휘하였다.

모부트대통령은 집권초기에는 사회주의적정책을 도입하여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과시하면서 모든 면에서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중요기업체들을 국영화하고 외교정책은 공산권과 접근하는 길을 선택하였으며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4년에 헌법을 개정하여 《혁명인민운동》의 당수가 자동적으로 대통령이 되도록 그 기틀을 마련해놓았다.

하지만 모부트대통령의 사회주의적로선은 며칠 가지 못하고 《기회주의로선》으로 선회하여 결국 《우파정권》이 되고말았다.

모부트대통령이 《우파정권》으로 선회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75년 이웃나라인 앙골라에서 독립운동단체들끼리 우파요 좌파요 하면서 파벌싸움이 격심하게 일어나 그것이 내란으로 번져나가자 미국은 모부트대통령을 끌어들여 앙골라의 우파를 적극 지원하였다.

당시 아프리카지역은 동서랭전의 대결속에서 미국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였다. 그때 영구집권의 야욕을 품고있던 모부트대통령은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들여야만 영구집권에 유리할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때문에 모부트대통령이 가졌던 《좌파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말았다.

그는 그 이후 미국의 강요로 앙골라내란에 직접 참여하여 앙골라의 우파를 지원했다. 이때문에 1978년에 모부트대통령의 《우경화정책》을 반대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꽁고의 모이세반군인 앙골라좌파군과 꾸바군의 지원을 받아 반모부트대통령반란을 시도한다. 그러나 미국은 프랑스, 벨지끄, 마로끄에서 우파지원군을 동원하여 모부트대통령을 위기에서 구출해줄뿐만아니라 오히려 우파정권을 전보다 더 튼튼하게 만들어주었다. 그후 모부트대통령은 단절했던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를 원상복구하고 친서방국가의 로선을 공고히 하였다. 그대신 모부트대통령은 아랍권 여러 나라들로부터 단교의 쓴잔을 마셔야만 하였다.

랭전시대에 모부트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1당체제하에서 20년동안 체제를 견지할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였다. 미국은 랭전이 종식되자 모부트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다당제민주주의체제를 채택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는 결국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1991년에 1당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다당제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한다.

꽁고독립후 처음으로 다당제민주주의정권하에서 야당후보자 치세게다가 총리로 당선되였지만 그 생명은 길지 못했다. 모부트대통령은 선거로 당선된 치세게다총리를 해임시키고 1993년에 대통령권한으로 비린드와를 총리로 임명하여 2중권력구조를 만든다.

그렇지만 1996년에 모부트대통령은 암으로 치료를 받게 되여 정치를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되자 정치권력을 자기의 아들 모부트에게 급히 넘겨주고 31년동안의 권좌를 떠나 스위스로 떠난다.

한편 모부트대통령을 반대한 죄로 20년동안 감옥에 갇혀있던 로랑 까빌라가 형을 마치고 1991년에 석방되여 다시 정권쟁취를 위해 준비한다. 그는 드디여 1997년 5월 32년만에 정권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모부트대통령은 1997년 9월에 병세악화로 67살의 나이로 마로끄에서 사망한다.

 

 

      주객이 전도된 정부군과 친미반군의 꽁고내전

 

로랑 까빌라는 1997년 5월에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까빌라대통령은 나라명칭을 다시 《꽁고민주주의공화국》으로 복원시키고 국기도 이전 국기로 다시 사용하도록 하였다.

까빌라대통령은 새로 장악한 정부군대를 정부민병대로 호칭하는 한편 이전 정부군대는 친미반군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반군을 적극 지원했다. 뿐만아니라 미국은 친미국가들을 총동원하여 로골적으로 《반군》을 적극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의 정부민병대를 지원하는 반미국가들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는 짐바브웨, 앙골라, 나미비아, 수단, 잠비아 등 여러 나라들이 참가했다.

1998년 8월에 《반군》이 주동이 되여 까빌라대통령의 진영을 반대하는 무장봉기를 일으켰는데 이때 친미와 반미의 7개국들이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내전이 더욱 확대되였다.

이때 발생한 꽁고내전은 국제분쟁으로 확대되여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 8월에 평화회의가 열렸지만 정세가 호전되지 않고 내전은 지속되기만 하였다.

내전이 지속되는 속에 로랑 까빌라대통령은 2001년 1월에 《반군》에 의하여 살해되고만다. 그는 20년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였고 전생애를 반제반독재게릴라투쟁에 헌신해오다가 결국 미국이 지원하는 《반군》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여기에서도 분렬과 암살을 통하여 침략정책을 계속하는 본색을 드러냈던것이다. 사실 미국은 《꽁고내전》의 초창기부터 관여하여왔다.

로랑 까빌라세력은 조성된 사태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살해된 로랑 까빌라대통령의 아들 조세프 까빌라를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의 과도정부수반으로 추대하여 위기를 극복한다. 조세프 까빌라는 그 당시 약관 37살이였다.

5년뒤인 2006년 7월에 42살이 된 조세프 까빌라는 무소속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여 꽁고민주주의공화국 과도정부수반에서 대통령으로 부상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한다. 이 선거는 독립한지 46년만에 처음 실시된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로 평가되였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2대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꽁고내전의 시작은 1998년에 《친미반군》이 로랑 까빌라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하여 무장봉기를 일으킨것으로부터 비롯되였다. 그때 이웃나라들이 《친미》혹은 《반미》의 리유로 서로 꽁고내전에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서방의 언론은 꽁고내전에 대하여 《아프리카판 세계 제1차대전》이라고 지적한다. 1998~2003년 꽁고내전동안에 인종청소, 고문, 학살 등으로 인하여 400만명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난민이 2 500만명이상 발생했다. 2차세계대전후 발생한 윁남전쟁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것이다.

이곳에서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겠는가? 그 대답은 명확하다. 《꽁고는 세계제일의 풍부한 지하자원의 나라》이기때문이다. 그래서 강대국들이 관여했고 꽁고국민들을 이리 가르고 저리 갈라 분렬시켜놓고 정복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분석된다.

미국정부는 선전하기를 《꽁고는 내전으로 위험한 곳이니 가급적려행 금지》라고 떠들고있다. 하지만 꽁고의 제2도시이며 광업중심지인 루뭄바에서 호텔을 예약하려면 1년전에 예약을 해야만 방을 얻을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국과 유럽의 광업기술자들과 사업가들이 항상 초만원을 이루고있기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꽁고는 절대로 위험한 곳이 아니라 돈을 벌수 있는 매혹적인 나라이다.

꽁고의 지하자원은 어떤것들이며 얼마나 있는가?

2008년 8월에 꽁고민주주의공화국 광업부가 개최한 국제박람회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구리 7 500만t, 코발트 450만t, 철 10억t, 주석원광 4억 5 000만t, 아연 799만t, 금 600만t, 다이아몬드 2억 4 000만t, 니오브 3 000만t 그리고 무진장의 골탄이 있고 우라니움, 납, 보코사이트, 린, 망간, 오일샌드, 바나디움은 물론 원유와 원목이 무진장 풍부하다는것이다. 이 자료는 현재까지 탐사작업을 통하여 국제적으로 확인된 자료일뿐이며 앞으로 계속될 탐사를 통하여 매장량은 더 증가될것이라는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로 나타나고있다.

이러한 지하자원들을 순위별로 분류한 자료에 의하면 꽁고의 다이아몬드는 세계 3위, 금은 10위, 구리 15위, 코발트 5위, 산림자원 2위라고 한다.

한가지 놀라운 이야기는 꽁고산 우라니움이 2차세계대전때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제조에 사용되였다고 하는데 그 우라니움은 이 나라의 Katanga주에 있는 광산에서 추출한것이라고 한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강대국들은 꽁고산 방사선광물거래에 대하여 지대한 우려를 하고있다.

이러한 지하자원들때문에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여온것으로 볼수 있다. 그래서 꽁고의 내전을 지역갈등이니, 종족문제니 또는 정파간의 권력다툼이니 하는것은 모두가 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조작해놓은 구실에서 나온것일뿐이라고 진보적학자들은 진단하고있다.

다시말하여 꽁고내전의 진짜원인과 리유는 자원을 둘러싼 외세의 리해관계와 외국기업들의 관계가 뒤엉킨 극렬한 양상일따름이다. 외세에 착취의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꽁고와 이웃아프리카나라들이 대리전을 치르고있다고 보는것이 정확한 분석일것이다.

지하자원이 세계제일이라고 하는 꽁고이지만 꽁고는 세계에서 가난하기로 유명한 빈곤국가이다. 물가는 턱없이 비싸고 인구의 71%가 기아로 영양실조상태에 있는 실정이다. 6 000만의 인구중에서 3 700만명이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30%만이 안전한 식수를 구할수 있다고 한다.

꽁고를 력사적으로 빈곤에 몰아넣은것은 한세기동안 계속된 식민통치이다. 독립후 10년은 정파싸움으로 식민통치와 다름없는 암흑의 기간이였다. 그후에 안정된 정권이 들어서는가 했지만 대중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되여왔다.

꽁고국민들은 묻고있다. 도대체 그 귀중한 지하자원들을 채굴하여 생긴 돈들은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가? 세계제일의 천연자원의 나라를 가장 가난한 나라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를 묻고있다.

32년동안 정권을 유지할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였던 미국의 지배세력이 챙겨간 돈은 얼마이며 이들에 기생하여 자기 배를 불리운 친미사대주의세력이 챙긴 돈은 또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이들 꽁고국민들자신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이 꽁고의 지하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몽땅 가지고있기때문이다.

지금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의 조세프 까빌라대통령은 40대의 젊은 지도자이며 민주주의적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여 집권한지 2년밖에 안된다. 하지만 지난 2007년 6월 12일에 외신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밝힌 그의 정책은 매우 분명하고 개혁적이며 희망적이다. 40개 질문과 답변중에서 매우 중요하고 뜻깊은 질의응답 몇개를 소개한다.

 

질문 : 이전 정권 32년동안 부패, 횡령, 행정문란 등을 강하게 규탄했는데 그 대안은 무엇인가?

답 : 오늘의 꽁고정부는 민주선거의 산물이다. 민주국가의 과제는 사법개혁과 잘못된 광물계약을 재검토하기 위하여 재검토위원회를 민주적으로 만드는것이다. 강요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력사적교훈에서 체득한 근로대중의 민주주의이다.

질문 : 국민들은 과거의 환멸에서 아직 깨여나지 못하고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답 : 우리가 40년동안 너무 긴 좌절과 환멸로 살아왔기때문에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전쟁에서 막 나오는 순간에 놓여있다. 오는 9월에 새로 출범한 새 정권에 대한 평가서가 나올것이니 좀 기다려보라.

질문 : 대통령취임후에 강건너 꽁고공화국을 방문했는데?

답 : 꽁고공화국을 우리의 적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고왔다. 대통령과도 친밀한 대화를 계속하기로 하고왔다.

질문 : 이전 정권시기에 외국기업에게 60개이상 광산계약을 했는데?

답 : 개인의 손익보다 중요한것은 국가이다. 잘못된 계약을 꽁고정부가 재검토하고있다. 우리 나라의 광산자원을 꽁고가 재소유하도록 하는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재검토위원회는 반드시 과거의 외국기업들이 불법으로 매수한 광업권에 대한 재검토작업을 진행하여 목적달성을 할것이다.

질문 : 꽁고민주주의공화국 정부장관들과 차관들은 모두 60명인데 이들중에서 직위를 리용하여 부정축재한 관리들은 없는지?

답 :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전혀 없을것이다. 독재와 부정축재는 쌍두마차격이다. 만일 아직까지 그런자가 있다면 가야할 곳은 감옥이라고 나는 각료회의를 통하여 명확히 강조하고있다.

 

      맺 는 말

 

꽁고내전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량단간에 벌어지는 리념전은 차라리 끝나기가 쉬울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적리권싸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이 계속 반복하기때문에 쉽게 끝나지 않을것 같다.

그동안 정부군과 반군사이에 또한 꽁고와 르완다 쌍방사이에 휴전에 합의하여 조인을 했다고 몇번이나 발표되였던가?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엔은 그동안 몇번이나 쌍방이 정전에 합의했다고 발표를 했던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하여 모든 언론들은 꽁고내전은 여전히 계속되고있으며 오히려 더 격렬해지고있다고 보도하고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의 젊은 지도자 조세프 까빌라대통령의 숨은 정책적지혜와 정치적결단을 엿볼수 있다.

조세프 까빌라대통령의 판단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미국은 절대로 꽁고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으며 제2의 이라크전을 꽁고에서 계속하면서라도 끝까지 꽁고의 불법적광업권을 유지하려 하고있다.

* 미국은 일부 친미적나라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그들도 역시 꽁고의 자원에 욕심을 부리고있다.

* 오늘현재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은 미국의 침략을 군사적으로 막을 힘이 없다.

* 미국외에 꽁고에게 도움을 줄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며 또한 반미적군사강국들이다.

 

이상과 같은 조세프 까빌라대통령의 판단과 그의 결단은 얼마전에 보도된 기사를 통해서 확인할수 있다.

이 기사에 의하면 중국은 최근 몇년동안에 꽁고에 80억US$를 지원하고 꽁고의 락후한 도로와 철도 그리고 학교와 병원 등 기간시설사업에 큰 도움을 제공하고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중국도 꽁고의 지하자원을 원하고 필요로 할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차이점은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은 불법적기득권을 내세워 몇십년동안 꽁고의 자원을 강탈해오고서도 그것을 영원히 지속하려고 욕심을 부리고있다. 이에 반하여 중국은 꽁고가 당하고있는 기본적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상부상조적외교관계를 전개해나갈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국은 80억US$의 지원외에 5 000여개의 짐함분에 달하는 물자들을 무료로 제공하여 락후한 시설들을 복구하도록 도와주고있다.

그래서 불법적이며 불공정한 계약으로 광산채굴권을 거머쥐고있는 미국과 영국의 광산회사들은 중국의 놀라운 접근을 저들의 기득권에 대한 침해로 여기면서 전전긍긍하고있다.

《뉴욕 타임스》(2008년 10월 31일)에 의하면 영국과 유럽련합 그리고 미국 등이 분주하게 꽁고를 오락가락하면서 까빌라대통령과 반군지도자를 번갈아 만나고있다는것이다. 이들의 행보가 무엇을 위한것인지 그 귀추도 주목되고있다. 유엔사무총장도 이들틈에 꽁고를 방문하고있지만 그의 행보 또한 앞으로 주목할 대상이 되고있다.

이 나라와 북조선과의 관계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 46년만에 민주주의적선거로 당선된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의 조세프 까빌라대통령이 2007년 12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군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16돐을 기념해 축전을 보내왔다고 북의 《로동신문》이 보도한바 있어 그 향방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은것으로 진단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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