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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1-13. 후지모리가 망친 뻬루 어디로 가고 있는가?   21-10-06
강산   946
 

류태영 박사


1.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침략과 반미열풍

 

□ 후지모리가 망친 뻬루 어디로 가고있는가?

 

      후지모리의 야누스 두 얼굴

 

일본계이민자로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뻬루의 대통령을 지낸 후지모리는 2007년 9월 22일 뻬루당국에 의해 체포되여 현재 감옥에 갇혀있으며 11월 26일에 예정된 재판에서 30년의 감옥생활과 3 300만US$의 벌금을 선고받을것으로 예상되고있다.

어찌하여 후지모리는 이렇게 큰 죄인이 되였는가?

후지모리는 재임 10년간에 그를 대통령으로 투표하여 당선시킨 빈곤층의 희망을 완전히 저버리고 배신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개방지향적인 신자유주의경제정책을 무모하게 추진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 후지모리는 실로 어마어마한 인권적차원의 범죄들을 많이 저질렀다.

후지모리는 1992년 4월에 앞으로 장기집권을 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의회와 대립하여 친위군부세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강제해산시키는 범죄를 강행하였다.

1993년 12월에는 군부의 힘으로 국민투표를 통하여 새 헌법을 제정하고 공포하여 드디여 장기집권을 할수 있는 정치적, 법률적발판을 마련하였다.

후지모리는 2000년 4월에 3선에 도전하여 1차, 2차 재투표까지 실시하여 억지로 3선대통령에 당선되였다.

하지만 7월 28일, 3선대통령으로 취임식을 거행하는 당일에 전국적인 대규모반정부시위가 벌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경비원 6명이 사망하는 비상사태가 일어났다. 사태가 이와 같이 번지자 그동안 후지모리가 저지른 숨겨진 많은 범죄들이 보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기 시작하였다.

후지모리정권이 야당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비데오테프가 공개되였다. 그의 부정부패는 나날이 폭로되고말았다.

언론을 강제적으로 장악한 사태를 비롯하여 의회를 불법적으로 해산한 사건, 야당후보들에 대한 도청, 유권자 수천명 명부조작, 군인과 경찰의 신분증위조발급조작, 국고류용승인 등 집권 10년동안에 저지른 후지모리정권의 부정부패와 비리는 이루 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드러났다.

후지모리가 활용한 특공대에 의하여 비밀리에 살해된 사망자도 25명이나 되였다.

결과 후지모리는 2000년 11월에 일본으로 도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도꾜의 한 호텔방에서 확스로 대통령사직서를 뻬루정부에 전송한 이후에 2005년까지 4년이 넘는 세월을 일본에 머무르며 소일해왔다.

후지모리가 또다시 세인은 놀라게 한것은 일본에서 도피생활을 하고있는 동안에 그는 일본의 시민권을 소유하고있는 특권을 악용하여 일본의 국회의원선거에 후보자로 등록하고 선거운동을 맹렬히 전개한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선거에서 락선하고말았다.

2005년 11월 6일 후지모리는 일본을 떠나야만 할 운명에 처하였다. 일본은 국제적체면때문에 후지모리에게 더이상 피난처를 제공해줄수 없게 되였다. 미국도 지금까지 후지모리를 침묵속에서 감싸주던 태도에서 돌변하여 이제는 모르는척 하였다.

후지모리는 하는수없이 최후의 수단으로 뻬루의 이웃나라인 칠레로 망명하였다. 뻬루와 칠레는 1932년에 망명자보호협약을 맺은바있기때문에 후지모리는 그 법을 활용할 속셈이였다.

뻬루정부가 후지모리의 12가지 범죄조목과 응당 받아야 할 재판과 형벌의 타당성을 칠레정부에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칠레정부는 뻬루정부의 이 요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등법원의 특명에 의하여 후지모리를 뻬루정부에 양도하기로 최종결정을 내렸다. 이제 후지모리는 이 세상 그 어느곳으로도 도망갈 곳이 없게 되였다.

금년 나이 69살인 일본계2세 뻬루의 전 대통령 후지모리는 AP통신이 전세계에 방영하는 화면을 통하여 고통스럽고 비통한 얼굴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공항에서 뻬루경찰에 체포되여 감옥으로 직행하였다.

오는 11월 26일 그가 뻬루법정에 서게 되면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인권유린범죄의 죄목들이 적라라하게 폭로되리라고 여러 단체들은 전망하고있다.

후지모리의 야누스적 두 얼굴은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뻬루의 토착원주민들과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고있다. 후지모리는 뻬루의 순진한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박았다.

 

 

      뻬루의 력사적배경

 

뻬루의 력사를 놓고보면 B. C. 10세기경부터 안데스산악지대를 중심하여 동양의 몽골계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다가 B. C. 1세기경에 토착한 농경문화가 형성되였으며 이 시기에 속하는 토기들과 제단과 신전들의 흔적이 아직까지 뻬루의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B. C. 3세기에서 A. D. 8세기까지 약 1 000년의 시기를 력사가들은 지역문화시기라 부르며 그후 A. D. 12세기까지를 통일국가시기라 부른다. 그후 15세기까지를 제2지역문화시기라고 부른다.

15세기에 이르러서 태양의 아들이라고 하는 인까가 나타나 뻬루를 중심하여 방대한 지역에 인까제국을 탄생시켰는데 인까는 그 당시 원주민 수백만명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였다. 그때 인까제국은 유럽의 문화를 릉가하는 거석을 리용한 건축술과 의술 등이 뛰여났다. 2007년에 스위스의 인간재단이 새로 지정하여 발표한 《세계7대불가사의》중에는 뻬루의 유물《마추픽츄신전》이 포함되여있다.

이 신전은 바로 15세기에 인까제국의 원주민들이 건축한 거석건물인데 해발 8 000ft의 높고높은 앙드레산꼭대기에 그와 같은 거대하고 웅장한 신전을 일떠세운것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것이 아닐수 없다.

뻬루의 앙드레산꼭대기에 우뚝 서있는 이 《Machu Picchu Sanctuary》는 과연 오늘 21세기에 존재하는 놀랍고 경이로운 불가사의한 력사유물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태양의 아들 인까가 건설한 위대한 인까제국은 경이로운 《불가사의》의 옛 모습만 그대로 남아있을뿐 인까제국의 위력은 에스빠냐의 총탄앞에 무참하게 무너져 없어지고말았다. 그후 뻬루는 에스빠냐의 식민지로 전락되여 백인들의 학살과 착취를 당하였다. 겨우 살아남은 인까의 후손원주민들이 결국 일생동안 노예로 지배를 받아야 하는 400년의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다.

 

 

      뻬루반제투쟁운동의 4대맥락

 

력사적으로 뻬루의 반제해방투쟁운동의 주요단계를 대략 4개의 맥락으로 요약할수 있다.

첫째, 인까제국의 혈통을 이어받은 토착원주민들이 전개한 강력한 반제해방투쟁운동.

둘째, 에스빠냐나 영국 등 유럽의 종주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한 유럽이민1세들의 반제해방운동.

셋째, 유럽이민자들의 백인2세들과 혼혈2세들의 좌경화된 사회주의적반제해방운동.

넷째, 흑인노예1세들과 2세들이 인권을 위하여 투쟁한 반제해방운동.

우의 네가지 형태의 반제, 반침략주의투쟁은 인까제국이 몰락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400년동안 줄기차게 계속되고있다.

인까의 피를 이어받은 원주민의 후손중에서 뻬루의 뚜빠끄 아마루장군의 무장봉기는 실로 뻬루의 원주민들 가슴속에 조상들의 유산을 되찾은듯 희망을 부여하였다. 뚜빠끄 아마루는 뻬루뿐만아니라 남아메리카전역에 영향을 끼쳐 여러 지역에서 부족들이 독립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도록 한때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1781년에 아마루장군의 무장봉기투쟁은 에스빠냐주둔군의 잔인한 소탕작전에 직면하여 전멸되고말았다. 아마루장군의 부인과 아이들은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처참하게 처형을 당하였다. 잔인한 에스빠냐군대는 아마루장군의 사지를 묶어 네갈래로 절단하여 주요도시에 보내여 인디안들이 공포심을 품도록 전시하기까지 하였다.

인까제국의 마지막보루였던 뻬루의 뚜빠끄 아마루장군의 투쟁활동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고말았던것이다.

 

 

      뻬루의 독립

 

뻬루가 에스빠냐의 식민통치를 완전히 물리치고 독립을 성취한것은 1824년이였다. 뻬루의 독립영웅 싼 마르띤은 에스빠냐정부의 과도한 세금과 극심한 식민지수탈정책에 반기를 들고 앞장에 서서 독립군을 창설하고 투쟁하여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였다. 싼 마르띤은 뻬루력사에 길이 남을 독립투사였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 우리가 분명히 밝혀야 할것은 싼 마르띤의 독립정신이 토착원주민들이 가슴에 품고있는 독립정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그의 투쟁정신은 백인들이 좀더 많은 물질과 좀더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한것이였다. 반면에 토착원주민들이 가슴에 품고있는 투쟁정신은 오직 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의 생존권자체를 추구하는 보다 더 절실한 투쟁정신이였다.

에스빠냐나 영국 등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침략자들은 현지에서 태여난 백인후손2세들을 가리켜 criollo라고 부른다. 이들 criollo들도 역시 에스빠냐식민지통치권에서부터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면서 투쟁하였다.

백인침략자1세, 2세들의 투쟁과 독립정신은 토착원주민들에게 있어서는 《그림의 떡》일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침략자들이 독립을 쟁취한 후에 원주민들에게 강요한 로동의 착취와 인종적학대와 멸시는 오히려 전보다 더 교활하고 극심해졌기때문이였다.

오늘에 있어서 뻬루인들이 반제, 반침략투쟁을 벌리고있는 투쟁의 대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이며 미국과 결탁한 자본주의적지배세력들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과거처럼 무력혁명을 투쟁방법으로 삼지 않는다. 그들의 투쟁방법은 선거를 통해서 대중의 힘으로 자신들의 권리와 주권을 투표행사하는 투쟁을 방법으로 삼았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투쟁의 옷을 갈아입은 뻬루인들은 투표혁명을 통하여 1990년에 동양계일본인2세 알베르또 후지모리를 뻬루의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2001년에는 원주민혼혈자 똘레도를 대통령으로 선출할수 있었다.

뻬루인민들이 선거혁명에 의하여 미제국주의침략을 물리치고 반제반미투쟁을 성공시킴으로써 라틴아메리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 뻬루를 비롯하여 7개 나라들이 선거혁명을 통하여 반제반미투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있는것도 그러한 영향의 결과라고 말할수 있다.

 

 

      뻬루의 오늘과 래일의 전망

 

후지모리가 체포되여 감옥에 갇혀있는 뻬루의 정가는 매우 뒤숭숭하다. 뻬루의 일부 보수세력은 후지모리의 부패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공산게릴라를 무력화시키는데 있어서 큰 공헌을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후지모리를 지지하고있다.

가르시아대통령의 통치능력이 미궁에 싸여 갈팡질팡하고있는 실정이다. 가르시아대통령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중도파로선을 내세우면서 2006년 7월에 집권하였다.

가르시아대통령은 집권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표명하였다.

《나는 챠베스 베네수엘라대통령, 까스뜨로 꾸바국가평의회 의장, 모랄레스 볼리비아대통령 등의 이른바 급진좌파와는 분명히 선을 긋고 중도로선을 지키겠다.》

가르시아대통령의 말은 듣기에는 좋은것 같으나 그는 우왕좌왕하는 난관에 빠져있다.

가르시아대통령이 중도로선을 주장하는것을 보고 미국은 얼마나 기뻐하였을가?

미국은 중도로선을 주장하는 가르시아대통령에게 시장지향적경제정책과 시급한 FTA비준을 강요하였다.

2006년에 실시한 대통령선거과정을 한번 살펴보는것은 오늘 뻬루가 직면하고있는 혼란스러운 정가의 모습을 어느 정도 리해할수 있게 한다.

뻬루에서 대통령선거를 지난 2006년 4월 9일에 실시하였는데 1차투표에서는 좌파민족주의자 우말라가 30%, 중도파 가르시아가 24%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1차투표에서 아무도 50%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한달후에 제2차 투표를 해야만 하였다. 6월 4일에 있은 제2차 투표에서는 역전승으로 이른바 중도파의 가르시아가 당선되는 이변이 생겼다. 제1차 투표에서 분명히 선두를 달렸던 좌파민족주의자 우말라가 2차투표에서 패배하였는데 그 리유는 무엇일가?

그 원인과 리유는 수십가지, 수백가지 많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두가지만 례를 들겠다.

첫째, 민족주의자 우말라의 배후에는 막강한 남아메리카의 좌파련대가 지원을 하고있었다. 베네수엘라, 아르헨띠나, 우루과이, 칠레, 볼리비아, 에꽈도르, 니까라과, 브라질 등 튼튼한 련대는 우말라후보에게 당선을 위하여 유리한 고지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립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할수는 없었다.

제1차 투표 바로 이틀전인 4월 7일에 뻬루주재 미국대사 데니스제트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성명 요약)

《우말라후보는 아주 믿을수 없는 괴퍅스러운 사람이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챠베스나, 볼리비아의 모랄레스보다 더 예측할수 없는 위험한 인물이다. 우말라는 과거에 뻬루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였던 사람이며 다른 사람의 인권을 유린한 경력이 있는 나쁜 사람이다.》

미국대사의 이와 같은 성명은 분명히 내정간섭이며 근거도 명시할수 없는 추상적인 모략적발언이였다. 표면적으로 이 정도라면 숨어서 그 얼마나 무시무시한 공작을 하였겠는가?

둘째, 뻬루의 언론은 일제히 우말라후보를 비방하고 모략중상하는 기사를 란발하면서 유권자들을 유혹하고 오도하였다.

《우말라의 아버지는 범죄를 감행한 한 인디안을 감옥에서 석방하려고 불법을 저질렀다. 우말라의 어머니는 뻬루의 동성련애자들의 뿌리를 뽑으려면 총살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악녀이다. 우말라의 동생은 군대에서 폭동을 일으키려고 계획을 한적이 있는 전과자이다.》

이와 같은 모략적인 언론선전의 배후에는 분명히 미국정보기관과 국내의 극우기업체들이 숨어서 작용하고있는것이다.

미국이 주도하고있는 뻬루의 우경화공작은 실로 심각하다.

그러면 가르시아대통령이 집권하고있는 오늘의 뻬루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뻬루에는 2 700만명의 빈민들이 하루에 1US$로 겨우 살아가고있다. 가르시아대통령은 최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것때문에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치고있다. 그를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지고있으며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하고있다.

5 000명의 광산과 공장로동자들이 시위를 하고 학교의 70%가 문을 닫았으며 교육종사자들도 시위를 벌리고있다. 7명의 경찰들이 시위대에 의하여 랍치를 당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뻬루사회는 분렬과 불안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있다.

가르시아대통령의 지지도는 계속 추락하고있다. 반면에 선거에 락선한 좌파지도자 우말라의 지지도는 날마다 상승하고있다.

2006년 11월에 실시한 전국의 지방정부선거에서 우말라를 지지하는 지방은 23개이며 가르시아대통령을 지지하는 지방정부는 단 3개로 나타났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놓고보면 뻬루가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가를 가히 짐작할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말라가 넘어야 할 산과 장애물은 앞으로 험산준령처럼 남아있다.

사실상 우말라가 넘어야 할 산과 장애물은 뻬루가 아니라 미국이다. 얼마전 미국이 조종하고있는 뻬루의 유능한 TV방송국의 기자가 아무 예고도 없이 해고를 당하였다. 해고리유는 방송국기자가 우말라와 대담을 하고 그것을 방영하였기때문이다. 해고를 당한 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뻬루의 민주주의는 돈있는 권력자와 돈없는 언론이 합의결혼하는것을 뜻한다.》

하지만 절망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 일본이 지원하고있는 후지모리의 몰락과 도망은 뻬루인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가르시아대통령과 부쉬의 자유무역협정합의를 반대하여 하루 1US$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고있는 2 700만 가난한 사람들의 끝없는 시위로 인하여 그 누구도 뻬루의 앞날을 예측할수 없다.

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받고있는 뻬루의 좌파지도자 우말라는 도약의 꿈을 꾸고있다. 우말라의 도약에 대하여 미국의 평론가들은 우말라의 도약의 꿈은 허무의 웅덩이로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고 말을 하고있다.

그러나 뻬루의 2 70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과 원한에 사무친 토착원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웨치고있다.

《그래도 좋다. 허무의 웅덩이로 우리모두 우말라와 함께 떨어지자.》

끝을 모르게 질주하는 뻬루인민들의 반미, 반제행진은 부쉬가 보기에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몇백년동안 참고참아온 뻬루의 토착원주민들의 반제, 반미투쟁의 앞날에 다가올 승리의 날이 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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