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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34   20-05-22
강산   79
 

34

 

백석산을 짚었던 김웅의 지시봉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니 당신한텐 1211고지밖에 없다는것이요?》

《네.》

로병관은 침착하려 애썼으나 상사말 뛰듯 하는 피의 설레임을 억누를수 없었다.

그는 오늘 낮에야 1211고지에서 떠나왔다.

전투 첫날에는 갱도굴설장에 있게 된 사정으로 전투원이 되였고 그뒤 이틀간은 52사와 63사를 오가며 전투진행과정을 살폈다.

군단지휘부에 들렸을 때 최현은 물론 만나는 사람모두가 죽었던 사람을 다시 보는것만치 반가와했다. 황영숙을 만나게 된것이, 그가 례없이 따뜻한 눈길로 맞아준것이 기뻤다. 이상스러운것도 있었다. 영숙의 눈길은 따뜻했으나 전번 건지리에서 만났던 때처럼 거리를 두는 태도였던것이다. 뭔가 요긴한 그리고 꼭 바라마지 않는 말을 할듯말듯 하면서…

그동안의 전투정황과 적정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릴 때 군단의 주되는 걱정거리가 탄약과 포탄문제임을 알게 되였다. 로병관이 전방에서 떠나온것도 실은 이때문이였다. 3일간의 탄약과 포탄소비량만 해도 《하기공세》초기때보다 배이상을 초과하고있었다. 그가 전방을 오가며 만난 모든 지휘관들과 전사들의 요구도 탄약과 포탄이였다. 이것은 그가 전투원으로 되였을 때 절박히 느껴본 체험이였다. 희생된 증기사수를 대신해 세개 상자분의 탄약을 쏘고나니 거덜이 났다. 때마침 탄약운반대가 왔으니 망정이지 하마트면 육박전병사가 되였을것이다.

그의 눈으로 볼 때 1211고지에로의 탄약공급이야말로 고지전투보다 더 어려운 일이였다. 매봉앞의 련대계선에서 중대계선까지 한개 소대를 떠나보냈을 때 그 절반인원도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살아온 사람들이 또다시 포화속을 뚫고 희생된 사람들의 탄약까지 날라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다가 적의 폭탄과 포탄은 깊숙이 은페된 탄약창고까지 들부셨다.

이러한 손실은 제1제대 계선에서, 특히 갱도를 미리 마련하지 못한 고지들에서 더 격심했다. 우박치듯하는 대구경포탄들에 종래의 엄페호식탄약고들이 견뎌내지 못했던것이다.

최현은 병기창고의 재고량을 걱정하면서 전선사령부에서의 공급도 기대할것이 못된다고 하였다. 전선사령관의 말이라고 했다.

로병관에게는 뜻밖이였다. 그는 멀지도 않은 보름전에 전선사령부 병기창에 들려 2군단 계획분이 다 확보되여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군단지휘부를 떠난 그는 우선 전선사령부 병기창에 들려보았다.

모든것이 그가 본 그대로였다. 그런데 5군단의 계획분은 발급지시가 내려왔으나 2군단의 계획분은 전선사령관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예비물자로 두게끔 하였다는것이 새로왔다.

로병관으로서는 좀처럼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가 들어서는것을 본 김웅은 몹시 놀래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두려움에 찬 모습이였다.

당황한 기색으로 어떻게 왔느냐고 물을 때는 책상밑에라도 기여들어갈듯 했다. 로병관이 탄약때문에 왔다는것을 말해서야 본래의 그로 되돌아갔다.

《늘 고지들에 나가있었다며? 무사한것을 보게 되니 기쁘오.》

언젠가처럼 차물을 권했다.

로병관은 뭐가 뭔지 알수 없는 속에 3일간의 전투에서 목격한것과 포탄과 탄약이 며칠내로 다 떨어질수 있다는것을 루루히 말한 끝에 2군단계획분에 대한 요구를 들이댔다.

김웅도 처음에는 어성을 높이지 않았다. 현재의 전반상황으로 볼 때 2군단 계획분을 비상용으로 하지 않을수 없는데 대하여 구구한 설명을 했다. 전선중부 특히 5군단지역에 대한 적의 공격이 심상치 않다고하며.

그전날의 로병관 같았으면 이러한 그의 말에서 《일리》를 찾고 순응할지 모른다. 허나 그는 순응도 양보도 하지 않았다.

김웅이 말하는 5군단지역에서의 본격적인 전투란 백석산에만 국한되여있고 그밖의 지역에 대한 공격은 위력정찰전투에 불과한것이였다. 그러나 2군단은 석사리의 851고지로부터 서희령까지의 전반지역에서 강력한 파장식공격에 대응하고있다. 1211고지란 바로 이 전반지역을 다 포괄하는 말이 아닌가. 그의 항변조의 말에 김웅은 그때까지 쓰고있던 《면사포》를 벗어버렸다.

《여보, 그따위 훈계는 걷어치우오. 동문 그사이 작전전술의 다양성조차 다 까먹은것이 아니요. 백석산은 5군단의 요충적관문이요. 적들은 바로 이때문에 백석산을 타고 앉은 다음 그 승세를 타 5군단전반지역을 다 휩쓸어버리자는것이요. 물론 현 상태에서 볼 때 적들의 주타격이 1211고지라는데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소.

허지만 전선중부의 적들이 5군단지역을 휩쓸면… 그 파구를 주타격방향으로 변경시킬수 있다는것을 동문 전혀 생각못하겠소?

이미 최고사령관동지께서도 백석산에 조성된 엄중성을 내다보시고 만전을 기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소. 이런데도 동문… 그래 동무생각엔 백석산이 떨어지고 5군단지역이 적들손에 넘어간 다음에야 포탄이다! 탄약이다! 보내줘야 옳다는것이요?》

로병관의 자제력은 여기서 동강이 났다.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진 백석산이 꼭 떨어지리라고 봅니까? 그러니 2군단계획분은 그때를 위한 예비로 된다는것이고.》

《이런 아다모끼라구야. 그래 동문 만약경우란것이 전혀 없다고 보는가…》

《전… 5군단동무들을 믿습니다.》

《허.》

김웅은 물끄러미 그를 여겨보다가 손을 저었다.

《그만하기요. 동무가 말하는 2군단분은 정세발전추이에 따라 인차 보내도록 하겠소.》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보냈음 합니다.》

《여보, 2군단은 이미 전방에 간것만해도 한달분정량이고… 최사선두창고에서 직송하는것이 있으니만치 일없소.》

《아니 최사선두창고에서의 직송은 5군단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로병관은 아연해졌다. 김웅은 한번 그를 스쳐보고는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있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난 동무가 과연 예전의 로병관인가 의심되는구만. 동무야 5군단공급량이 2군단에 비해 훨씬 적다는것을 알고있지 않소.》

《그거야 적의 주타격이…》

《아아… 그 말은 그만하고… 한데 최현동문 꿈쩍도 않는데 동문 왜 이 지경이 되였소. 내가 동무를 처음 만났을 때 뭘 주의하라고 했던지 생각나오?…》

《모르겠습니다.》

로병관은 모르지 않았다. 입에 올리기도 싫었거니와 당면문제가 급했던것이다.

김웅은 랭소를 머금었다.

《난 동무가 인테리출신이니만치 인테리적나약성과 동요성에 대해서 경고했댔소.》

《사령관동지, 지금 그런 말을 할 때입니까?…》

《아니, 해야겠소. 동무도 얼마간은… 들어 알겠지만 해당기관들에서는 바로 동무의 그런 출신과 그로부터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를 생각하여 주시했소. 그 과정에 동무가… 우리 대렬에 있을수 없는 사람임을 알고… 그러했던것이요. 혹시 동문 이때문에 나를 원망했을수도 있지만… 나도 동무를 보증하기 어려웠소. 그러나 난… 사실 남들 같으면 동무를 직접 체포하여 그… 일군에게 넘겼을거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로병관은 깜짝 놀랐다. 그런데 김웅은 그보다 더 놀라와하는 기색이였다. 그러나 김웅은 인차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동문 전혀 모른다. 그것이요?》

《전… 무슨 일인지.》

《그렇다면 나한테서만 듣고… 더 알려고 하지 마오. 동무를 송우인과 결부시켜 간첩이라고 기소한 사람들이 있었소. 이 문제해명을 위해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나도 무척… 고심했소. 다행히도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동무에 대한 그런 감투를 벗겨주셨소.》

로병관은 머리가 핑핑 돌고 발밑의 땅이 꺼져내리는듯 했다. 죽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듯 하던 군단검찰소장이며 최현이며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났다.

《내 다시 말하지만 이 불미스러운 건에 대해서는 여기서 하는 말로 끝을 내기요. 일을 더 잘해야겠소.》

김웅은 대화가 끝났다는 표시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다른 말이 없으면 후날 다시 만나기요.》

《알겠습니다.》

로병관은 습관된 대답을 하였으나 그냥 굳어붙어있었다. 지금 상태로 돌아설수도 없었거니와 그렇다해서 또다시 《요구》를 입에 올리기도 어려웠다.

《간첩》이라는 어마어마한 딱지가 어떻게 붙여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루명을 벗겨주려 장군님께 전화까지 걸었을 김웅의 마음쓰임이 뜨겁게 헤아려져 입에 빗장을 지르게 했던것이다. 김웅을 면바로 보기도 두려웠고 자기가 민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용서해 주십시오. 인정은 인정이고 사업은 사업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운을 떼려고 마음먹었을 때 전화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로병관에게는 다행이라 싶어졌다. 그러나 송수화기를 드는 김웅의 눈길이 또다시 매눈처럼 되여 자기에게 멎어있는것을 보자 죄진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삐그덕 의자를 밀어젖히는 소리와 함께 발뒤꿈치를 요란스럽게 부딪치는 소리에 훌쩍 놀랐다. 김웅은 차렷자세를 취하고 서있었다. 로병관이에 대해서는 보는둥 마는둥이였고 얼굴은 씻은듯 밝아졌다.

《네. 그렇습니다… 실었습니다.》

련잇는 말소리는 감격에 젖어있었다.

로병관은 저도 모르게 《아!》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장군님이시다!

박일우와의 전화때도 앉은 자리에서 받던 김웅이 이처럼 경건한 자세로 있는것은 그가 유일무이하게 어려워하는 장군님이시기때문일것이였다.

로병관은 그전 같았다면 그한테로, 전화기쪽으로 바싹 다가갔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김웅의 말과 얼굴표정에서만 무언가 느끼고 해석해야 했다.

김웅의 입에서는 《네,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만이 흘러나왔다. 두번 감탄사가 튀여나왔다. 《콩말입니까. 벌써!》, 《알겠습니다. 건 폭탄으로 될것입니다!》

로병관은 그전까지의 암호에서 《콩》이 지뢰라는것을 알고있었으니만치 그이께서 걸어오신 전화가 《병기물자》와 관련된 용건이 아닐가하는 속에 또 그런것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조금도 념려말아주십시오.… 귀체 건강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송수화기를 놓고 난 김웅은 여느때의 신호단추호출이 아니라 방이 떠나갈듯 한 웨침으로 부관을 찾았다.

《사령부 비상소집이요. 부장이상 전체 여기로!》

번개같이 뛰여들어왔다가 되돌아나가는 부관의 뒤모습을 일별한 김웅은 기고만장한 눈길로 로병관을 보았다.

《동무의 소원도 풀리게 되였소.》

《…》

《장군님께선 우리 전선의 전반실태를 헤아려보시고 예비조성은 걱정말고 창고의 모든 탄약과 포탄들을 전방에 내보내라고 말씀하셨소. 난 당신의 그 2군단분을 오늘밤으로 죄다 보낼 작정이요. 보오. 괜한 티각태각이 아니였소. 허허 참.》

《그럼 전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아, 아 또 한가지 있소. 콩을 실은 차량이 이밤안으로 고산에 도착하오. 장군님께선 그 차량들이 고원역에 이른것까지 알아보시고… 동문 콩에 있는 비타민성분을 아오?》

《저… 콩이란 진짜 콩을 념두에 두신…》

《허허, 동문 그동안 완전히 땅굴사람이 되고말았구만. 콩이야 콩이지. 동문 콩나물전설을 못들었소?》

《알고있습니다.》

《음, 그럴테지. 이건 력사에 없는 일이요.》

로병관은 최현으로부터 콩나물에 대한 전화를 받던것을 생각했다.

《사령관동지, 전 이젠 고산역에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시오. 나도 거기 가보고싶지만… 우선 포탄, 탄약반출이 기본이니까 잘해주오.》

로병관이 고산역에 이르렀을 때는 가마니에 포장된 콩을 한참 부리우고 있을 때였다.

한개의 이동고사포대대의 엄호속에 어데서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왔을가 할 정도의 수많은 군인들이 한개씩 혹은 두개씩의 가마니를 지고 번개같이 움직였다.

만짐상태의 자동차들이 연신 들이닥쳤다. 최사선두창고와 후방창고에서 떠난 차들이였다. 여기서도 김웅의 빈틈없는 조직력을 찾아볼수 있었다. 도로경무초소들에 지시를 떨궈 그러한 운수차들에 덧짐을 싣게 했을것이다.

차들이 들어설 때마다 호각을 입에 문 군관들이 뛰여가 《전사요? 천이백열하나요?》 하고 소리쳐 물었다. 전사란 전선사령부를, 천이백열하나는 1211고지를 의미하는것인데 이제 와선 2군단이 천이백열하나라는 대호를 가지게 된셈이였다.

콩가마니 한짝이라도 없어지면 목을 내놓게 되였다는 역경무장과 함께 차들의 부대명을 알아보고 상하차일도 거들어주던 로병관은 탄약상자가 빼곡이 찬 적재함모서리에 콩가마니를 박아넣던 한 군인이 껑충 날아내리는통에 걸음을 멈추었다.

《장령동지,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그 군인은 제잡담 로병관의 손목을 잡았다.

역경무장은 물론 콩가마니를 메고 나르던 군인들까지 무슨 일인가 하여 보는중에 그 군인은 반가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식으로 손을 잡아 흔들었다.

《장령동지, 접니다. 한달전에 제가 태워드린적이 있지 않습니까…》

《아, 알겠소.》

얼굴보다 목소리가 귀익었다.

《동무가 나한테 낮수송금지를 일깨워줬댔지.》

《그 그렇습니다. 전 지금 당증을 타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당증을?》

로병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증이야 사단당위원회에서 수여받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장천일은 그의 의문같은것엔 아랑곳 않았다.

《그리구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저의 유물을 찾아주셨습니다.》

《유물이라니?》

갈수록 심산이였다. 장천일은 여러 사람들의 눈길이 쏠린다는것을 알자 더욱 헤덤벼치며 말했다.

《하, 글쎄 기막힌 일이였습니다. 어느 욕심스런 령감이… 올해 초라고 합니다. 그 홈타기에서 유물을 찾아내고는 온 여름 끼고있다가 조국보위후원회에 바쳤지요. 리기주의령감이였지만 전쟁을 치르는데 보탬이 되라고… 한데 군에서도 그게 뭔지 모르다나니 도에 올려보냈는데… 그걸 받은 후원회일군도 어떻게 할가 하다가 창고에 뒀다는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글쎄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알아보시구…》

장천일은 부끄러움을 잊은듯 손등으로 눈굽을 뻑 닦고는 차렷자세를 취했다.

《그에 대해선 도당에서 들었습니다.》

《하여간 축하하오.》

로병관은 뭐가 뭔지 알수없는 속에 웃어보이고 차에 실은 짐이 뭔가고 물었다.

《보병총 탄약입니다.》

《전방 직송이요?》

《네. 매봉까지 가기로 되였습니다.》

《음. 그곳까지라면 간단치 않구만. 잘해보오.》

《네. 근데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인데…》

《저를… 제일 먼저 출발하게끔 해주십시오. 전 그동안… 락후분자가 되였습니다.》

도대체 앞뒤 갈래판을 알수 없는 말이였으나 로병관은 선선히 응낙했다.

《그런 부탁이야 못들어주겠소. 동무야 원래 솜씨가 있지.》

《네. 자신있습니다.》

장천일은 껑충 뛸듯 하며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사람들로 들끓듯 하는 방통쪽을 향해 《아바이! 아바이!》 하고 소리높이 찾았다.

《거 아바이란 누구요?》

로병관은 돌아서려다 말고 물었다.

《장령동지도 아는 아바이입니다.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우리 군단장동지한테서 <특별전선출입증>까지 받은 법동아바이 있지 않습니까.》

《법동?!》

그가 미처 안다는 말도 하기전에 큼직한 손에 쥐인 종이장이 불쑥 코앞에 나타났다.

《옛수다.》

로병관은 첫눈에 알아보았다.

《아니 김만산로인이 아니십니까?》

《누구신지.》

보란듯이 종이장을 내밀고 엄엄한 자세로 서있던 만산로인은 저으기 당황한 태도로 천일이며 그를 보다가 《어뿔싸.》 하며 엎어질듯 그의 손을 잡았다.

《장령어른이셨군요. 그렇게 신세를 지고도… 제가 밤눈이 어둡다보니.》

《특별전선출입증》인듯 한 종이장을 덧저고리앞섶에 밀어넣으며 끌끌 혀까지 찼다.

《이번에도 전선원호길입니까?》

《네. 좀 뒤늦었수다. 가을걷이를 하느라구… 정말 여기서 또 이렇게 뵙다니…》

로인은 기뻐서 어쩔바를 모르며 햇곡식을 찧어가지고 오는 길에 장천일이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엔 혼자서 떠나겠습니다.》

《네. 한 이틀 참으면 함께들 오는건데 가을걷이들을 채 못끝내서… 어디 기다릴수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떠난 길입네다.》

《정말 장하십니다.》

《원, 장하다니요. 지금 우리 계선 1211고지소문이 쫙 퍼져서 집안로댁들도 엉뎅이를 들썩이고있는 판인데요. 한데 난 이번에 이 운전사동무덕에 호사를 하게 되였습니다. 제가 그냥 차를 타고가도 일없겠지요.》

《거야 여부가 있습니까. 아바이가 가는 길을 어느 누가 막겠습니까.》

《전 이번에 1211고지까지 가볼 료량인데… 될수 있겠지요?》

《허허. 1211고지까지…》

고산역주재 2군단 병기참모가 나타나는통에 이야기가 중둥무이되였다.

콩을 덧실은 2군단방향의 탄약차들을 우선 출발시켰으면 하는 그의 말에 로병관은 역경무장과 함께 매 차들의 위장상태를 알아보고 출발명령을 주었다. 만산로인은 장천일의 차를 선두에 세우는것이 마치 자기와의 안면때문인듯 또 한번 곡진하게 인사를 했다. 로병관은 이 첫 행렬의 뒤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차들의 뒤꽁무니마다에는 하얀 종이장이 붙어있다. 전조등은 물론 표식등까지 끄고 달리게 된 상태에서 운전사들은 이 종이장표식을 놓치지 않고 바싹 따라야 했다. 그런만치 선두차 운전사의 눈과 솜씨가 좋아야 한다.

(장천일이가 꽤 해내겠는지.)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여서 은근히 마음이 죄여들었다. 하긴 운전사들은 달없는 밤을 더 좋아한다.

《별일 없을것입니다. 적기들도 지금은 휴식이니까요.》

병기참모의 말에 시계를 보니 야광시계는 세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정말 맞춤한 시간이였다. 대체로 밤 두시부터 새벽 다섯시까지는 적기들도 별반 날아들지 않는 시간이다.

로병관은 콩운반때문에 달려온 전선사령부 운수대대의 지휘관을 만나 다음 차편대조직과 미처 운반하지 못한 콩의 처리방법을 알아본 후 차에 올랐다. 5분도 안되여 《달구지행렬》의 꼬리를 물었다. 이때부터 1단과 2단으로 속도를 늦춰야 한다. 포탄과 탄약운반때마다 《달구지》들의 꼬리를 물고가는데 습관된 운전사였지만 혹시나 하여 《앞서 가자면 여기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강산 20-05-22 18:25
 
(위에서 계속)

철령에 오르면 제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나갈 폭이 없는 길이기때문이였다. 로병관은 그의 뒤잔등을 한번 치는것으로써 그런 생각을 말라는 신칙을 주었다. 매번 이랬다. 자름자름한 별들이 돋은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졸지 않기 위한 예방책으로 운전사에게 이따금 말을 붙여보다가 철령고개마루에 이르렀을 때 급작스러운 차의 제동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적기들입니다.》

앞의 차들도 멎어섰다.

로병관은 날카로운 눈길로 하늘을 휘살펴보았다.

연푸른 공단같이 가없이 펼쳐진 하늘에는 빨갛고 파란 불들이 깜빡이며 움직였다. 수자로 봐서 10여대 넘어보였다. 빨갛고 파란 비행등의 불빛이 더 가까이 내려앉음과 함께 하늘과 땅이 우릉우릉 울렸다.

이쯤되면 어디 후방쪽이 아니라 바로 이 고개를 노리고 덤벼드는것으로 된다.

마치 로병관의 생각을 반증하려는듯 몇대의 비행기가 기수를 내리드리웠다. 자지러진 고사총의 울부짖음과 무쇠가마를 때리는듯 한 고사포의 발사음이 맹렬히 울렸다. 그와 함께 적기들의 동체에서 빗살같은 불줄기가 쏟아져나왔다. 기관총의 불찌는 선두차가 가닿았을 고개마루쪽에 집중되고있었다.

폭탄을 떨구지 않는것으로 봐서 목표탐색을 위한 어리짐작의 사격같았다. 하지만 한발의 총탄이 큰 일을 칠수 있다는것으로 둔덕진 산턱으로 오르는데 고개마루쪽에서 한가닥 불길이 솟구쳐올랐다. 폭발이 없는것으로 봐서 탄약이나 포탄상자에는 맞지 않은것이 분명했으나 선회비행을 하던 중폭격기들이 그 불길쪽을 향해 기수를 돌리는것을 보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구나.)

 

장천일은 차창이 순간적으로 벌겋게 물드는것에서가 아니라 감각으로 느꼈다. 탄약상자가 아닌 그 무엇인가에 설화탄이 명중된것이다.

《에쿠, 콩가마니에 불이요.》

한시절 범을 잡았다는 법동로인은 문짝을 밀어젖히려 헤덤볐다. 장천일은 로인이 열려는 문짝의 손잡이를 돌렸다. 자기가 이렇듯 침착한것이 자못 놀라왔다. 절커덕 문이 열림과 함께 로인을 밖으로 밀쳐 떨구었다.

《아바이, 안녕히 계십시오.》

변속대를 4단으로 옮김과 함께 가스변을 밟았고… 전조등을 켰다. 뭔가 웨치는 로인의 울부짖음소리를 들으며 령길을 내리달렸다.

(그래, 이게 마지막일수 있어.)

그는 전조등을 껐다가는 다시 켜고 그랬다가는 다시 죽였다. 이러기를 계속 반복했다.

《이쯤하면 너희들이 나를 쫓지 않고 어데로 가겠니.》

울퉁불퉁한 길바닥 여기저기에 불꽃 점선이 팡끗거리고 련속되는 폭음속에 차가 훌쩍 뜨기도 했다.

《오냐, 잘한다, 잘해. 나한테만 오너라. 나한테만.》

언젠가 사리원이 고향인 유조차운전사가 바로 자기처럼 적기들을 유도했던것을 생각했다.

차체에 부딪치는 총탄과 파편의 아츠러운 마찰음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빌었다.

(제발 탄약만은.)

무수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군단정치부 일군으로부터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던거며… 도당위원장방에서 열렸던 세포총회며가…

마정옥을 만나지 않은것이 크나큰 후회로 가슴을 긁었다.

무엇때문이였던가. 깜짝 놀라게 하려고 했었다.

《자. 보오. 당증이요…》 그 다음 많은 말을 하려고 했다.

따르륵!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조향륜을 틀어쥔 손에 선뜩선뜩한것이 떨어져내렸다. 그러자 오른쪽 어깨가 불시에 맥을 잃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기관부에서 룡트림하듯 연기가 솟구쳐올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한데 왜 이럴가.)

그는 머리가 흐려지는것을 느꼈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조향륜에 가슴이 부딪치는 순간 딱딱한것이 감촉되였다.

(조금만 더 가면 금강교지.)

다시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차도 마사지고… 새차나 다름없는것인데…)

이상스럽게 이번에는 정옥이가 아니라 원산에 도착하던날 이 비슷한 폭격을 당했던것과 그 통에 적재함과 기관부가 거덜이 난 차를 수리하느라 련 사흘낮 사흘밤을 밝혀 일해주던 운수사업소 로동자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쾅! 눈앞에서 또 한번 섬광이 번쩍함과 함께 뭔가 죄다 날려버리는감을 느꼈다. 앞에 희스름한것이 보였다.

(탄약만은 구해야 하는데.)

그는 희스름한것을 향해 곧추 차를 몰았다.

(정옥이, 내 당신한테 당증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 말은 그의 의식속에서만 맴돌았다.

 

마정옥은 한마디의 말도 눈물도 없었다. 그저 애원어린 눈길로 이사람 저사람 여겨볼뿐이였다. 그것이 더 아픔을 자아내였다.

(애당초 그를 데려온것이 잘못이 아닐가?)

로병관은 그보다 못지 않게 창백한 얼굴의 영숙을 보며 이 세상 못볼일이 이것이구나 하며 입술을 짓씹었다.

군단지휘부에 갔다가 최현의 범치듯 하는 호령에 마정옥을 찾게 되였고 그와 가깝다는 영숙과 함께 여기까지 오게된 로병관이였다.

 

그사이 장천일의 초벌수술을 끝냈다는 군의소장은 소생의 희망은 전혀 없다고 했다.  어깨를 뚫고들어간 파편이 심장부위의 혈관을 다쳐놓은데다가 심한 출혈로 지금까지 살아있는것만도 기적이라는것이다.

밤새 천일이한테 붙어있은 만산로인은 이곳이 군의소 입원실이라는것도 또 천일이가 생사지경의 갈림길에서 헤매는것도 죄다 잊은듯이 담배만 꾸역꾸역 빨고있었다.

간밤에 이 로인만 아니라면 장천일의 행방을 모를수도 있었다.

불붙는 차가 적기를 유인해가고 그로 하여 11대의 차가 무사하게 되였다는것을 알았을 때 로병관은 천일이도 천일이지만 이 로인에 대한 근심이 컸다. 이 로인과는 고개마루밑에서 만났다. 탄약차들은 세울수 없었던지 그가 탄차가 나타나기 바쁘게 길복판을 막았던것이다. 차에 올라타서는 연신 금강천쪽을 손짓해보였는데 말은 알아들을수 없었다. 울음으로 범벅진 소리였기때문이였다.

금강천의 모래톱으로 차를 몰고가다가 뒤집혀진 상태로 물속에 잠겨있는 적재함을 보게 되였고 얼마쯤 더 가서 물우에 솟구쳐있는 운전실지붕을 보게 되였다. 물은 장천일의 어깨탁에까지 올라와있는데 부서진 차창에 머리를 박고있는 그를 만산로인이 붙안아내렸다.…

《그럼 난 이젠 그만 돌아가겠수다.》

만산로인이 누구에게라 없이 말하며 훌쩍 일어섰다. 로병관과 시선이 마주치자 놀랍게도빙긋 웃어보였다.

《뭐 다른게 아니라… 이제 가서 삼을 가져오자는거우다.》

《삼이라니요?…》

로병관에게는 너무나 뜻밖의 소리였다.

《그런게 있수다. 내가 얼른 가서 가져올테니 그때까지만…》

로인은 마정옥에게 돌아섰다.

《새애기, 강심을 먹으라구. 새애기두 그렇구. 여기 숱한 군대들이 피를 넣어주었는데 그거면 살아. 이제 삼을 갖다멕이면… 황소처럼 될거구… 그땐 새애기도 가까이 가면 안돼. 뼈가 으깨여질테니까.》

로인은 어설픈 웃음을 그리며 마정옥의 어개를 조심스럽게 쓸어주었다.

가는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그래 울라구, 울어. 임자 울음소리가 이 사람한테는 약이 될걸세.》

밖에 나와서는 엄엄한 얼굴로 굳어져있었다.

뒤따라나온 로병관을 보자 헛기침을 했다.

《저… 아바인 정말 떠나시자는겁니까?》

《가야지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구 하지 않습니까. 어떤 군댄데…》 로인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언저리를 닦았다.

불당골어귀의 도로경무초소에까지 와서 로인에게 차편을 보장해주도록 하고 군단지휘부에 들어섰을때는 점심식사시간이 훨씬 지났었다.

복도에서 영숙이와 헤여질 때 서로 약속이나 한듯 멈춰섰다.

영숙이가 먼저 말을 떼였다.

《이제 전방으로 나갈 기회가 있어요?》

《있소.》

《그럼 오빠한테… 저의 문안을 전해주세요.》

로병관에게는 그 부탁이 단순치 않은 말로 가슴을 후덥혔다.

《나도 한가지 부탁을 하겠소.》

로병관으로써는 먼저 고맙다는 인사말을 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단념했다. 최현으로부터 자기의 《간첩》건에 대한 그의 《보증》건을 들었지만 그것은 말만으로써는 안될것이기때문이였다.

영숙의 손만은 한번 꼭 잡아쥐고싶었으나 그렇게도 못했다.

《내 부탁이란… 기회를 봐서… 장군님께 인사를 올려달라는것이요. 그리고… 다른것은… 후날 말합시다.》

돌아설 때 두려웠다.

그러나 영숙이가 고개를 끄덕이는것을 그리고 정겨움에 차 본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숨을 크게 들이쉬였다.

최현은 책상우에 펼쳐놓은 작전지도앞에 서있었다. 맞갖지 않은 기색이였다.

《군의소장은 우는 소리를 한다지?》

《네.》

《떨떨한 녀석이야. 뭐? 가망이 없다구?》

최현은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있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장군님께선 장천일이를 꼭 살려내라구 하셨소. 살려내라구… 어떤 영웅인가.》

그리고는 두손을 맞잡아 비틀다가 또다시 어성을 높였다.

《그런데 군의소장 그 녀석은 우는 소리만 징얼거리구 있거든, 우는 소리만…

동문 황영학이 도주한걸 알고있소?》

《저… 퇴원했다던데요?》

《퇴원은 무슨 퇴원. 짜고 든 도주인데. 미순인지 며느리인지 그까지 끌고갔어.》

《군의소장동무 말로는 채 낫지 않았기때문에 담당간호로…》

《그러니 짜고든 도주라는거야. 그건 그만하구… 여기 오우. 장군님께서 새로운 명령을 주셨소.》

지도앞에 다가간 최현은 귀등에 꽂았던 색연필을 뽑아들었다. 얼굴색은 여전히 어두웠으나 눈빛은 불맞은 호랑이를 보는 사냥군의 눈 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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