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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33   20-05-21
강산   81
 

33

 

친전

도꾜 릿지웨이사령관 앞

금일 한국군 정보국에서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동해안방어를 맡고있던 인민군군단의 한개 련합부대가 원산 남쪽으로의 기동을 개시하였다고 한다. 그 최종목적지는 전선동부의 2군단 방어지역으로 추측된다. 또 하나 인민군 5군단 방어지점인 백석산일대들에서도 일련의 배비변경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불의적인 정황에 대처하여 나는 한국군 7보사와 미 2보사의 일부 력량으로 백석산에 대한 시탐적인 공격을 재개하게 했는바 현재(9월 26일 15시)까지의 인민군방어상태를 보면 지난 시기보다 배가의 력량이 집중된것으로 관측된다.

각하의 고견을 기대한다.  

경의를 표하면서

8군사령관 밴플리트대장

 

친전

8군사령관 밴플리트 앞

귀관이 받은 정보는 정확한것이다. 제반 판단에 대해서도 동의를 표시한다.

그러나 전선동부에 대한 력량집중은 우리의 새 공세에 대한 공포로부터 출발된 일시적인 예방책이며 그곳으로(1211고지-저자주)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신호에 불과하다는데 류의하기를 바란다.

설사 적들이 전선동부에 대한 우리의 작전적기도를 간파했다하여도 이제 와서 돌아설순 없다.

나는 새롭게 변화되는 정황으로부터 공세개시의 한가지 세부를 수정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우리의 공세를 전선서부와 동부에서 동일한 시각에 같은 방식의 공격으로 개시하자는것이다. 이것은 하기공세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데도 있다. 하기공세시 적은 전선서부에 대한 우리의 기만적인 공격에 속지 않았다. 지금의 실황은 이번에도 그와 같은 식의 기만에는 속지 않으리라는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9월 21일부터 개시된 전선중부의 김화, 금성리방향에서 공격전투를 계속 벌림과 함께 9월 29일을 기하여 전선서부와 전선동부에서 일체식, 전면공격을 개시하도록 할것이다.

전선전반에 대한 이러한 동시적인 공격은 적으로 하여금 타격방향을 가늠하게 할수 없을것이고 부득불 우리의 수에 말려 들어 피동에 빠져들게 할것이다.

     성공을 기원하며. 유엔군사령관 매트 비 릿지웨이.

                              1951년 9월 27일 17시

 

9월 26일 저녁 홍천에 자리잡은 미 10군단 사령부와 장교구락부에서는 미국인 연예대의 마지막공연이 있었다. 오직 미군들만을 대상해서 공연도 하고 《위문》도 하는 이 《칸사스연예대》는 대다수 녀성군인들로 이루어진것으로서 개중에는 일본에 있는 자기들의 남편과 애인을 찾아왔거나 나들이겸 돈벌이로 미국을 떠나온 갈보들로 구성되여 있었다.

이 공연관람에는 《미한련합군》의 긴밀한 협동작전을 위해 불리여온 《한국》군의 몇몇 장교들과 함께 송우인도 참가했다.

송우인으로서는 별반 달갑지 않은 구경이였다.

보나마나 미국인들 고유의 야생적인 광증과 정열을 자극하는 울부짖음과 추한 몸부림을 예술이랍시고 봐야 할것이기때문이였다.

지금까지 그는 1년나마 미국인들속에서 미국식생활을 해왔지만 왜서인지 그런 광증과 정열의 란무에는 습관되지 못했다. 모름지기 할아버지의 괴이쩍은 죽음과 어릴적부터 귀 닳게 들은 예수의 가르치심이 작용한 때문인것 같았다.

공연은 그의 생각대로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거의 모두가 색정을 도발하는것들이라 혐오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박수를 칠 때면 박수를 쳤고 손을 저을 때면 다른 누구보다 못지 않게 손을 휘저어 주었다.

수치를 느끼지 못한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더 큰 수치를 이겨낸만치 거기엔 무슨 의지요 자제심이요 하는것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멀지도 않은 바로 보름전에 이미 10군단 관하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리승만의 《선물》을 세개의 대형뻐스에 한가득 싣고 왔던것이다.

거기엔 이미 《빵빵걸》로 된 녀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녀학생이거나 자그마한 극단에서 하루하루 끼니거리를 벌던 연예인들이였다.

송우인으로서 그중 흥미있게 보게 된것은 춤과 노래가 섞인 어리광대극이였다.

《합중국의 고민》이라는 제목의 이 어리광대극에는 신통히도 돈키호테와 산쵸판쟈를 련상시키는 키다리녀인과 난쟁이가 노래를 부르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동맹국군의 각이한 음식을 놓고 해학적인 가사와 몸놀림으로 관객을 웃겼다.

 

헤이! 헤이!

프랑스병사는 포도주

네데를란드병사는 우유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 브라보》 할 때마다 난쟁이녀자는 맛스럽게 먹는 흉내를 내며 엉뎅이를 흔들었다.

 

헤이! 헤이!

이슬람교병사는 돼지고기

힌두교병사는 소고기

노! 노! 노!

 

이때의 난쟁이는 구역질이 난다는 시늉을 하며 몸을 꼬는데 송우인도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뒤이어 부르는 가사에 신경이 살아 올랐다.


  헤이! 헤이!

한국병사만은 다 좋다네

김치고기, 우유고기, 빵고기

오케! 오케! 오케!

 

가사도 그렇지만 마구 먹어대는 흉내를 내는 난쟁이의 모습에 송우인은 얼굴까지 화끈해졌다.

게걸스러운 돼지로 변한 난쟁이는 키다리의 장딴지까지 물어뜯었다.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휘파람까지 불며 고아치는 속에서 송우인과도 풋낯이 있는 백선엽군단의 련락장교가 일어나 《그만둬라. 그만둬.》 하고 소리쳤던것이다.

장내의 소음에 비해 볼 때 그의 목소리는 별로 높지 않았건만 순간에 실내는 물 뿌린듯 조용해졌고 흥에 넘쳐있던 두명의 어리광대는 놀란 새처럼 무대뒤로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서 불만스런 웨침들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그 련락장교와 몇명의 《한국》군장교들이 보란듯이 객석에서 나가버렸다.

(젠장, 좀 참을거지.)

송우인은 그 장교들을 쏴보는 날카로운 눈길들에 불안을 금치 못하였다. 다행히도 무대 소개자가 새 종목을 알리고 뒤이어 반라체의 녀인들이 나타난것으로 하여 다른 일은 생겨나지 않았다.

송우인은 두 세종목이 끝난 다음 그 장교들의 일이 궁금하여 밖을 나섰다. 그들이 자리잡은 숙소쪽으로 향해 발길을 옮기다 말고 혹시 자기의 행동을 그들과 같은것으로 곡해하는 눈이 있는듯 하여 선자리에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잘한 일이였다.

《송준장도 그 챠플린놀음에 기분을 잡쳤습니까?》

그에게 다가온 사람은 8군사령부 정보처에 있는 중좌였다.

《당신은 왜 보지 않소?》

송우인은 되묻는 식의 대답을 했다. 형광등의 불빛에 비낀 중좌의 눈에는 미묘한 웃음이 스쳐지났다.

《나는 송준장에게 방금전의 일때문에 방조를 청하려고 나왔습니다.》

《그건 뭔데?》

송우인은 여전히 도고한 자세를 취해보였다.

열흘전에도 이 중좌앞에서 이런 《방조》를 청하는 말을 들었고 그때도 이런 도고한 자세로 되물었다.

중좌는 역시 그때처럼 유순한 태도로 말했다.

《난 방금전에 퇴장한 한국군장교들에게 송준장이 잘 타일러 줄것을 부탁합니다.

송준장이야 미국사람들을 잘 리해하지 않습니까. 우린 유모아가 강한 민족입니다.》

《알고있습니다. 난 그러지 않아도 그들의 실례되는 행동을 추궁하려던 참이였습니다.》

《아니 추궁할것까지야 못되지요. 그저 리해를 시켜주십시오. 내가 보건대 당신네 한국인들은 속이 좀… 트이지 못한게 흠입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잠간.》

송우인은 되돌아 서려는 그를 멈춰 세웠다. 로병관을 우리 쪽에 데려오겠느냐고 하던 그의 말을 생각했던것이다. 열흘전 쉘슨 2세라고 부르는 이 중좌는 믿을만 한 소식통에 의한 정보라고 하면서 로병관이 수뇌부의 신임을 잃고 동요하는중이라는것, 그로부터 로병관을 돌려세우는 공작을 해야 하니만치 송우인의 방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방조란 로병관에 대해 알고있는껏 말해 달라는것과 그에게 편지를 쓰라는것이였다.

송우인은 로병관에 대해 말해주는것에는 동의했으나 편지를 쓰는것만은 못하겠다고 했다.

《요전번 당신이 한다던 로병관에 대한 공작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중좌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잘 안됩니다. 송준장의 편지가 있었다면… 십분 가능하였을것입니다.》

《중좌, 그때도 말했지만 그는 편지 한장으로 돌아설 인간이 아니요.》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돌아섰다.

《송준장.》

이번에는 쉘슨이 그를 멈춰 세웠다.

송우인은 흠칫했다. 자기가 지나칠 정도로 쌀쌀했다는 그것으로 뭔가 오해를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생각에.

《또 다른 방조건이 제기되오?》

절반 롱담식으로 묻자 쉘슨은 웃어보였다.

《내가 한가지 잊은것이 있습니다. 오늘 낮에 송준장 동생의 편지를 건사했댔는데 이제야 생각나는군요.》

그는 아래주머니에서 봉합엽서를 꺼내주었다.

《이건 어떻게 당신 손에 들어왔소?》

《달리 생각 마시오. 8군사령부의 당신한테 보내는것이니 나한테 들어온것이지요.》

송우인은 더 묻지 않았다. 8군사령부가 아니라 고향집에 보내는 편지도 다 뜯어본다는것은 병사들까지 알고있는 사실이다. 더구나 카츄사병의 편지니 봉투안까지 샅샅이 더듬어 봤을것이다.

(오라질것들.)

송우인은 괜히 마음을 죄였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숙소침실로 들어섰다. 침대옆 상두대에는 봉인을 떼지 않은 위스키병에 햄통졸임까지 있어 불면증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아도 되였다.

창가림을 내린후 탁상등앞에서 봉투부터 자세히 살폈다. 뜯어 본 흔적은 없었다.

봉투를 찢으니 사진 한장이 떨어져 내렸다. 영희와 우식이가 풀밭에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이였다.

(이건 어찌된거야?)

사진 뒤장을 보니 《꽃 피는 산골에서》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평화시기에 찍은 사진이였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는 속에 한가닥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형님, 저는 오늘의 편지가 형님에게 보내는 마지막편지로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저흰 래일부터 사단최선두의 《처벌전투대》에 편입되여 싸우게 됩니다. 공로를 세우면 인차 소환된다지만 그 공로가 어떤것이고 또 어떻게 공로를 세워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된데는 형님도 아시겠지만 우리 대대의 곡사포들이 인민군대의 습격에 전부 반파 혹은 완전파괴되였기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형님한테도 나라앞에서도 면목이 없게 되였으니까요. 이로 인한 처벌전투에는 저희들 경비소대전원과 일부 미군장교들도 포함되여 있습니다. 미군장교님들한테 몹시 죄스럽습니다…

 

송우인은 혀를 찼다.

곡사포대대가 어찌어찌 했다는것은 별문제였으나 동생이 처벌전투에 나간다는것이, 더구나 면목이요 죄스럽소 하는 소리를 련속 쓴것이 놀랍기 그지 없었다.

 

형님, 저는 요즈음 사람의 팔자며 운명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무엇때문에 살며 바른 삶은 무엇인가. 또 행복이란 무엇이고 행복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럽이나 미국사람들은 어린이를 가리켜 천사라고 한다지요.

그리고 우리 고향의 어른들은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지요.

나는 형님도 그 노래를 즐겨 부르던것을 잊지 않아요. 《꽃 피는 산골!》 얼마나 좋은 말이예요. 《천사》라는 말도 아름답구요.

우리 고향도 꽃 피는 산골이였지요. 집울안의 앵두꽃이 필 때면 온 마을이 울긋불긋했구요. 형님한테서 설 익은 앵두를 따먹었다고 뺨을 맞던것이 생각나요. 그때 로형님과 황형님이 말려줬지요.

한데 우린 언제 가면 고향에 가볼수 있을가요. 고향에서는 저를 좋지 않게 여길수도 있겠지요. 그곳 사람들은 죄다 빨갱이들일테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 빨갱이들을 마지막 한놈까지 죄다 없애고 승리자로 가겠어요. 승리자는 제 마음 먹은대로 된다고 하니 얼마나 좋을가요. 저는 군수어른이 될것이구 영희는 마나님이 되겠지요. 한데 영희는 이 세상에 없답니다. 그는 천사로 살다가 천사로 갔습니다.

저도 고향에 가면 천사가 될것 같아요. 천사들은 그 어디에 있건 서로 만난다고들 하는데… 예수님의 복음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

이 기회를 빌어 형님한테 많은 말을 하려고 별렀지만 막상 쓰자고 보니 안되는군요. 저에 대한 근심을 말고 아무쪼록 형님의 장래가 광휘롭기를 빌어요.

형님을 형님이라 아니 부를수 없는 동생 송우식 씀.

            1951년 9월 27일 밤 12시

 

두번 편지를 곱씹어 읽고난 우인은 뭐가 뭔지 알수 없는 불안속에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에는 우식이도 전선류행병인 히스테리에 걸렸다고 단정했으나 그런것은 아니였다. 세밀한 타산과 (편지검열관들의 눈을 속이려는)복잡한 심리적과정을 거친 랭철하면서도 단단한 결심이 느껴졌기때문이였다.

우식은 언제 한번 《빨갱이》란 소리를 한적이 없었고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서는 왜서인지 적의부터 앞세웠다.

(무엇때문에?… 무엇을 바래서?…)

당혹한 마음속에 영희가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는것과 천사요, 꽃 피는 산골이요 하는 글구가 뭔가 심상치 않은 무서운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형님을 형님이라 아니 부를수 없는 동생으로부터》라고 한 마지막글줄은 형인 자기에 대해서는 물론 이 세상과 삶에 대한 혹독한 조소와 저주였다.

3년전 밀선을 세내여 데려온 아버지와 어머니가 장질부사로 사망되였을 때도 우식은 《형님을 형님이라 아니 부를수 없는 동생》이라고 했다.

술에 억병으로 취한 우식이 고향에 그냥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입에서 구렝이가 나오는지 뭐가 나오는지 모를 소리를 함부로 떠드는통에 《너한텐 형님도 없느냐》고 하며 호령호령 했는데 그때도 뺨을 친것 같다. 우식은 그때 《그래 형님이야 형님이지요. 나로 보면 형님을 형님이라 아니 부를수 없는 동생이구요.》라고 하며 서럽게 울었다.

우인은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집어들었다.

조선옷차림을 한 영희의 모습이 유난히 눈을 찌른다. 이 세상 만복을 다 안은듯 한 행복스런 모습이다.

(어떻게 되여…)

만약 편지에 적힌 글이 사실이라면 우식에게서 이 세상과 이어진 줄 하나가 또 끊어져 나가는셈이다.

영희가 죽었다는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우인은 오래지도 않은 바로 열흘전에 영희를 만나봤던것이다. 리승만의 《선물》건문제로 서울에 갈 때 대전시청에 잠시 들려서였다.

그때의 영희는 건강과 생기에 넘쳐있었고 얼마간은 들뜬 상태였다. 국방부에서 조직한 1선장교들과 《무공자》들에 대한 가족, 친척면회에 자기도 뽑혔다는것이였다.

우인이도 알고있는 사실이였다. 그가 대전시청에 들려 영희를 만난것도 바로 그때문이였다.

《그래 꼭 가겠소?》

《가야지요. 뭐 미국제 합승뻐스를 직행하게 된다니 어려울것도 없지 않아요. 남들은 사바사바 뒤공작도 있었다지만 저한텐 국방부 날인까지 있는 <전선출입증>이 나왔는걸요. 시청의 미국인고문씨는 저에 대해선 미8군사령부에서 직접 추천이 있었다고 하며 특별편의보장이 있을것이라고까지 했어요. 우식씨의 덕이라고 하면서 우식씨가 굉장한 무공자라더군요.》

《여하튼 그곳은 전방이 아니냐.》

《아이, 인민군 포탄이 게까지 날아올가요?》

《꼭 그래서 그런건 아니지만.》

송우인은 《위문단》이요 《연예대》요 하는 어중이 떠중이들의 놀음놀이속에 영희가 끼이는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던것이다. 이때문에 그는 8군사령부의 민사국 요원이 제수된 녀인도 전선래방자로 알려줄 때 결혼도 안한 사이인데 하는 식으로 반대했지만 그것을 일종의 겸양으로 받아들였는지 작성된 명단은 제 갈 길을 따라 영희까지 되돌려 세울수 없게 만든것이였다.

(언제 어떻게?)

우식의 《비정상》을 알려면 영희의 죽음부터 알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그것을 안다는것은 거의나 불가능했다.

그는 원탁우의 전화기를 물끄러미 보다가 머리를 저었다. 작전과 관련된 전화외는 일체 사용할수 없게 된 전화다. 그리고 이 방의 전화는 그를 위해서라기보다 그를 필요로 하는 《질문》과 《지시》가 올 때만 쓰게 되여있다.

다음날 아침 미10군단 지휘참모성원들과 함께 이번 공세의 개시 《음악》으로 된 203포사격을 지켜 보고난 우인은 제정된 계획에 따라 백선엽군단을 찾아갔다가 그 길로 8군사령부로 되돌아섰다.

그가 수행한 임무란 이번 공세와 관련된 미, 《한》련합군 지휘관들의 협동작전토론시에 윤활유를 치는것이였다.

모든 일이 수나롭게 되였다. 《국군》만의 《혈투》에 늘 불만해 하던 백선엽은 희희락락한 얼굴로 《쾌승》을 장담했다. 미군과 거의 맞먹는 중화기와 물자를 보급받은데다가 1211고지를 지향한 이번 공격에는 미1해사를 제1제대로 한 미10군단전체가 본격적인 개입을 한다는것으로 《혈맹》의 감격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시간을 무척 허비했다.

10여m 너비의 포항-간성간 도로에는 1211고지를 재더미로 만들 포와 포탄차들이 두줄로 꽉 차넘쳐 있었던것이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이 길엔 돌과 흙더미들이 무둑무 쌓여있었고 곳곳에 《섯, 수리중》이라는 표말들이 너저분했다. 그런데 단 이틀사이에 대폭의 2등도로로 되였다.

그 막강한 힘의 반증이런듯 도중도중의 길녘에는 대형불도젤들과 불도젤삽을 단 대형땅크들이 서 있었다.

해빛에 번뜩이는 강철판의 삽날을 보는 그의 가슴 한쪽에는 의연히 우식이와 영희의 그림자가 배회하고있었지만 그들과 온 세상을 향해 웨치고 싶은 장쾌무쌍한 격정이 치밀어 올랐다.

(힘!)

대형불도젤들이 흙무지와 돌무데기를 순

 
강산 20-05-21 21:28
 
(위에서 계속)

돌무데기를 순간에 밀어버리듯이 조만간 1211고지라는 전선도 쓸어버릴것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게 했다.

그는 이 순간 한달반전의 그날에도 이런 신심에 넘쳐 있었다는것도 그뒤 얼마 안되여 동요와 의혹속에 모대김치던것도 잊었다.

그가 8군사령부에 도착하니 전선서부와 중부의 9군단을 찾아갔던 밴플리트는 이미 와 있었다. 송우인의 보고를 받은 밴플리트는 저녁식사를 함게 하자고 하면서 우선 목욕부터 하자고 했다. 그런데 우인이 목욕을 하고 동석식사장을 찾아가니 밴플리트는 여전히 전선래방시의 군복차림이였다.

그는 도일 히키를 비롯한 막료들보다 우선 송우인앞에서 실례했다는 식의 미안쩍은 표정을 띄우며 몸차림을 깨끗이 못한데 대하여 량해를 구했다.

《나한텐 목욕할 시간도 주지 않으니 어쩌겠소.》

우인은 그의 옆에 앉은, 바로 오늘부터의 공세때문에 워싱톤에서 날아온 국방부차관을 보면서 밴플리트가 한 말은 바로 이 워싱톤 손님때문이라는것은 알았으나 일종의 감동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환갑이 지난 몸으로 그 멀고 험한 산길을 걸었으니 오죽 힘겨웠을것인가. 그의 아들이 조선전선에서 희생되였다는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였다.

(우식에 대해서도 영희에 대해서도 잊어야 한다.)

식사를 하면서 이번 작전의 전도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밴플리트는 자기의 전선중서부행이 인민군에 알려질 경우를 말하면서 이러한 지도방법은 김일성최고사령관한테서 배웠다는 턱없는 롱말까지 하였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였다.

《하기공세》직전에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4군단에 간것이 일종의 《기만》을 노린것임을 최근에야 알게된 밴플리트는 1211고지쪽에는 실무진들을 비밀리에 파견하고 자기는 열두대의 차로 구성된 와디디한 행차로 전선서부로 나갔다가 온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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