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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2-30   20-01-11
강산   231
 

30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는 전선에서 멀지 않은 숲가에 있었다. 홍명희부수상이 여기에 도착한것은 오전 10시경이였다.

그는 주차장격으로 된 골어귀의 공지에 차를 세우고 경위중대장을 따라 눈을 쳐낸 숲속통로로 걸어들어갔다.

겨울치고는 류달리 잠풍했다. 눈부신 해빛이 어제 내린 하얀 눈더미우에서 자글자글했다. 눈을 함뿍 들쓰고있는 땅크들이 부릉부릉 발동기소리를 죽여가며 큰길가로 굴러가고있었다. 산자드락으로부터 골짜기를 따라 자동총을 휴대한 군인들이 한 50m 간격을 두고 늘어서있었다.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 특별경계근무성원들인 모양이였다. 다들 흰천으로 위장하고 자동총을 쥔 손에는 두툼한 솜장갑을 끼고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는 홍명희의 마음은 불시로 뿌듯해졌다. 그 솜장갑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피땀이 들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그였던것이다.

그는 눈을 들쓰고 묵묵히 서있는 침엽수들을 지나 커다란 천막쪽으로 다가갔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여기에서 전선지휘를 하고계신다.

천막안에서 장령 두사람이 나오다가 홍명희에게 군대식 경례를 했다. 온통 흰눈을 쓰고있는 은빛세계에서 모직외투에 커다란 장령별을 박고있는 그들의 모습은 신기한 대조를 이루었다. 장령들은 홍명희가 지나갈수 있게 눈속에 한발씩 잠그고 길을 드텨주었다. 홍명희는 황황히 그앞을 에돌아가며 한손을 들어 답례했다.

천막앞에 이르자 어느새 아셨는지 장군님께서 친히 나오시였다. 며칠전 내각 제30차 전원회의를 지도하시면서 하루종일 같이 계셨건만 그이께서는 대단히 반가와하시였다. 홍명희를 천막안쪽의 난로가까이 자리잡게 하며 말씀하시였다.

《오신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눈길에 이렇게 빨리 도착할줄은 몰랐습니다.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장군님!》 홍명희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며 송구스러워했다. 《저는 뭐 바쁘지 않습니다. 해방지구 인민생활안정에 대한 대책안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여기서 몸을 좀 녹이십시오.》

천막안은 훈훈했다. 난로에서 장작불이 이글거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여러대의 전화기들이 놓인 탁자에 앉아계셨고 맞은편에는 남일이 서있었다. 그리고 탁자우에는 홍명희도 자주 보아온 커다란 지도-총참모부에서 작성한 정황지도가 펼쳐져있었다. 남일이 끊어졌던 보고를 다시 계속했다. 홍명희는 두손을 비비며 남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편 전선동부에서 우리의 제2전선부대들에 의하여 원산이 해방되고 고원, 영흥 (금야), 정평 등 함흥이남에서 행동하던 인민유격대들에 의하여 이 일대가 해방되자 동해안을 따라 함흥-원산방향으로 패주하려던 미제10군단과 괴뢰군1군단의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고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미 제10군단과 괴뢰군1군단을 안변계선까지 퇴각시킨 다음 그곳에서 전선서부에서 퇴각하는 미 제8군부대들과 련합하여 황주-안변계선에 중간방어 <A선>을 실현하려던 맥아더의 기도 역시 파탄되였습니다.

지금 맥아더는 미 제10군단 패잔병들을 바다로 빼내기 위하여 <흥남철퇴작전>을 준비하고있습니다. 정찰국의 보고에 의하면 미 제77기동분함대와 미90기동분함대가 흥남앞바다에 나타나 대대적인 비행기폭격과 함포사격을 퍼붓고있다고 합니다.…》

홍명희는 사뭇 놀란듯 한 표정으로 남일을 바라보고있었다. 무엇인가 달라진것이 있었다. 예나 다름없이 남일은 꿋꿋한 표정이였고 억양도 예전 그대로였지만 벌써 그는 전날의 남일이 아니였다. 그 어떤 강인성과 독창성, 목적지향성을 겸비한 참모일군이 그의 눈앞에 서있었다. 홍명희는 기억에도 생생한 지난 9월의 어느날 일을 상기하면서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날 그의 얼굴은 침통하였고 목소리는 떨렸으며 결국엔 아무런 방안도 없이 땀을 흘리며 장군님앞에 서있었다. 하지만 지금 남일은 자기의 의젓한 자세로서 그리고 확신에 넘친 어조로서 승리하는 전선을, 전선의 실태를 보고드리고있는것이다.

《…지금 적들은 어떻게 하던지 38°선에서만이라도 중간방어를 즉 새로운 <B선>방어를 조직하려고 미쳐날뛰고있습니다. 그리하여 맥아더는 종심에 예비대로 있던 괴뢰군3군단과 괴뢰군 륙군본부직속부대들을 38°선중부와 동부로 내몰고있습니다. 벌써 괴뢰군3군단지휘부는 원주로부터 춘천에 옮겨와 그 무슨 <결사전>을 부르짖고있습니다.

놈들은 먼저 이 지역의 우리 제2전선부대들을 구축해보려고 획책하고있습니다. 어제 하루동안만 해도 괴뢰군3군단의 2개 사단을 땅크, 비행대의 지원밑에 춘천, 가평 일대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제2전선부대들은 춘천-홍천사이의 모래고개 일대에서, 가평-서울사이의 도로와 춘천-화천, 춘천-양구사이의 도로에서 적들의 진출을 완강히 견제하였습니다…》

홍명희는 버릇처럼 짧은 코수염을 비다듬으며 두눈을 찌긋하고있었다. 남일의 보고가 중단되지 말고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랐다. 난로의 뜨거운 열에 그의 얼굴은 벌거우리하게 상기되였다. 깊이 감동되고 금시 터질듯 부풀어오른 가슴을 한손으로 지그시 눌러대면서 어느새 주머니에서 꺼내든 《모란봉》 담배갑을 만지작거렸다. 한갑에 40대나 들어있는 이 《모란봉》 큰 갑도 하루새에 다 태우군 하는 애연가로서 그는 이 벅찬 흥분을 그대로만 참고있을수 없었다. 마침 장군님께서 그를 바라보시면서 웃음을 지으시였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어서 담배를 피우라고 권하시였다.

그때 남일은 적들이 전선서부에서의 38°선중간방어를 기어이 성사시켜보려고 련천을 중심으로 대량 무력을 집결하고있는데 대하여 보고드리고있었다.

《지금 적들은 교활한 전술을 쓰고있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놈들은 우리의 공격이 맹렬해지면 별로 대항함이 없이 시가지를 내주었다가 아군이 시내를 차지한 다음 땅크를 앞세우고 반돌격을 감행하고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련천이 중요하오. 련천은 서울, 개성, 철원 등과 련결되여있는 중간지대로서 새로운 군사전략적요충지로 되고있소. 그러므로 최현동무에게 련락하여 어떻게 하든 련천일대를 장악하고 적예비대들의 38°선계선으로의 진출을 불허하며 적들의 38°선중간방어기도를 결정적으로 짓부셔버리도록 해야겠소.》

홍명희는 한껏 구수한 담배연기를 들여마셨다. 아니, 그저 담배연기가 아니라 지난날들의 말 못할 고뇌와 우수를 다 태워버리는 그 형언할길 없는 환희를 가슴가득히 들여마신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 어떻게 남일의 보고가 끝났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덧 장군님께서 지도를 마주하고 서계시였다.

《곧 전선동부의 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련합부대들에 미 제10군단과 괴뢰군1군단의 패잔력량을 포위섬멸할데 대한 명령을 전하시오.》

남일이 수첩에 급히 적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지도우에 확대경을 옮겨가며 천천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해안연선을 따라 적을 추격하는 인민군련합부대들과 장진-함흥방향으로 공격하는 중국인민지원군련합부대들은 서로 긴밀히 협동하여 함흥북쪽과 동북쪽에서 저항하는 적을 소멸할것.

계속하여 흥남, 서호 지역으로 적을 압축하면서 맹렬한 타격을 가할것.…》

홍명희는 자리에서 일어서있었다. 장군님께서 계속하여 전선서부와 제2전선부대들에 새로운 전투명령을 주실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그는 또다시 경건한 감정에 휩싸여 이 수수한 천막과 커다란 지도며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구절구절을 되새겨보고있었다. 지금까지 보아오던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있었고 새로운 청각으로 듣고있었다. 저도모르게 눈굽이 쩌릿쩌릿해났다. 눈앞이 뿌얘지고 호흡이 절박해졌다. 시가에도 있듯이 기아에 허덕이다 한술의 밥을 먹어본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의 진가를 다 알지 못하는법이다. 새벽을 기다려 길고도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본적이 없는 사람은 참다운 기쁨을 다 알지 못하는법이다. 하다면 이 가슴속에 고패치는 이 재량할수 없는 환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가보냐!?…

장군님께서 무슨 말씀인가 하시자 남일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대답올렸다. 그리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장군님께서 홍명희에게 물으시였다. 그러나 그는 그이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단번에는 리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서류철을 당기며 황황히 서둘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홍명희가 펴든 대책안을 주의깊게 보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문제는 내각결정으로 채택하도록 하는게 좋겠습니다. 긴절한 문제입니다. 국가에서 해방지구인민들과 전재민들에게 량곡과 주택 등을 보장해주며 주요 시, 군 소재지들에는 림시 양로원, 애육원을 조직하여 무의무탁한 늙은이들과 어린이들을 돌보게 해야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서류뚜껑에 손수 《내각결정 제×호-해방지구인민생활안정을 위한 대책에 관한 결정서》라고 써주시였다.

홍명희는 얼마후 밖으로 나왔다. 작전국일군들과 새로 기동해가는 련합부대장들이 대기하고있어 몹시 서둘러야 했었다.

다시 경위중대장의 안내를 받으며 큰길쪽으로 나왔다. 어느덧 태양은 중천에 떠있었고 흰눈에 반사되는 해빛으로 하여 눈이 부실지경이였다.

어데선가 노래소리가 울려오고있었다. 골어귀에 서있는 땅크우에서 한 병사가 하모니카를 불고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각이한 차림의 병사들, 처녀들이 둘러서있는것이 보였다. 새로 전선으로 기동해가던 도중 휴식하는 부대같았다. 골안에서는 위장한 차들이 움직이고있었다. 홍명희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떠이고 허리를 잔뜩 꼬부린 로송곁에서 남일이 웬 외국인과 마주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남일과 몇마디 말을 주고받고싶었는데… 홍명희는 잠간 망설였다. 무슨 사업상의 용건은 아니다. 언젠가 저 강직하고 영민한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을 못미더워하고 불안해했었다는 사실이 그와 마주서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저 말없이 굳은 악수를, 견실한 마음과 신뢰의 정만 표시하여도 한결 마음이 건듯해질것만 같았다.

홍명희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엇인가 손세를 써가며 남일에게 열심히 말하고있던 외국인이 정중히 인사를 했다. 남일이 소개했다.

《기자 스딴도르 벤꼬입니다.》

홍명희는 그와 간단히 인사했다. 가죽잠바에 털모자를 눌러쓴 벤꼬는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는 주홍색의 턱수염을 비비꼬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부수상선생도 계신 여기서 오랜 시간을 뺏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몇가지만!… 우선 이 놀라운 전변을 두고, 그야말로 경이적인 이 사변을 찾아 맨처음 달려온 외국기자로서…》

그 순간 남일이 야릇한 미소를 그렸다.

《떠날 때도 역시 맨먼지 갔었지요.》

벤꼬는 털모자를 벗었다. 광택이 없는 푸르스름한 그의 두눈이 허둥거렸다.

《그랬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엔… 모든것이 결말을 짓고있는것처럼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견해로써는… 파국이였지요. 저만 아니라 실상 온 세계가 그렇게 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 나라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본것은 무엇이였겠습니까.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인 당신도 그때 같이 있었지만… 말 한마디 없이 슬픔에 굳어진 피난민들의 모습 그리고 진창에 빠진 포차를 꺼내려고 가득 몰켜서서 목에 피줄이 일어서도록 용을 쓰던 군인들 그런것이였지요. 그런데… 아마 그런 침울하고 어두운 인상밖에 받지 못한것이 나의 돌이킬수 없는 실수였는지요. 어떻습니까. 그것이 나의 커다란 과오였는가요?…》

남일은 홍명희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은 《부수상선생, 이 사람이 무얼 말하고있는지 통역해드릴가요?》하는 의미였다. 홍명희는 가볍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다박다식한 홍명희는 일찌기 일본어, 중국고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5개국 외국어를 소유하였고 쉑스피어 궤테, 하이네, 유고의 작품들을 원문으로 읽으므로 그들이 사용하고있는 로어도 그렇게 귀에 설지는 않았다.

홍명희와 남일의 표정을 살피던 스딴도르 벤꼬가 조심스럽게 또 입을 열었다.

《계속해도 좋을가요?》

남일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저는… 특파기자로서 제가 본 이 경이적인 사변에 대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주려고 합니다.》

하모니카와 노래소리가 커갔다. 하모니카에 맞추어 땅크병들, 처녀병사들까지 목소리를 합쳐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전차 한대 달리다가 문득 서더니

웃뚜껑 벌컥 열고 전차병 내려와서

 

전쟁전에 나온 노래였는데 근래에 와서 특히 널리 퍼졌다. 재진격의 피끓는 시기에 충만된 힘과 열정과 기백에 넘친 전사들의 마음에 그 노래는 잘 화합되고있었다.

벤꼬는 두팔을 쩍 벌렸다. 남일은 물론 홍명희까지 그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것을 보고 그 어떤 실망감을 표현하고자 한것 같았다.

《벤꼬선생.》 마침내 남일이 입을 열었다. 《선생자신이 여기서 보고 느낀 모든 점들로 그 대답을 찾을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대답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즉 전인민적인 항전으로 침략자들을 물리쳤다고말입니다.》

스딴도르 벤꼬는 손에 든 연필로 주홍색 턱수염을 재빨리 비벼대였다.

《옳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실례입니다만 더 명백한 답을 바라는데…》

《그보다 더 명백한 답은 없습니다!》하고 남일은 노래소리가 울려오고있는 그쪽을 얼핏 바라보며 말했다.

《전인민적항전이라는 말을 결코 그 어떤 수자적개념으로 리해하면 안됩니다. 문제는 어떤 적을 상대로 어떠한 인민이 맞서싸웠는가 하는것입니다. 당신도 우리의 영웅적인민군전사들이 어떻게 싸웠는가를 보셨겠지요? 이제 우리의 나어린 소년, 소녀들이 어떻게 소년빨찌산을 무어 침략자들과 싸웠는가를 들어보십시오. 적들이 강점한 모든 곳에서 남녀로소 할것없이 떨쳐일어나 어떻게 싸웠는가를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그야말로 하나같이 영웅적으로 싸웠습니다.》

《벌써 그렇게 말하고있습니다. <영웅조선>, <영웅적인민>이라구요.》

《우리는 새롭게 태여났습니다. 그리고 영웅으로 자라났습니다. 지금 우리 인민은 세상에 알려진 순하고 어질고 례의바른 인민만이 아닙니다. 우리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을 존엄있고 굴함없고 긍지높은 인민으로 키워주셨습니다. 우리 인민을 각성시키고 무장시키고 판가리싸움에로 궐기시키셨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자들을 타승하고있습니다!…》

벤꼬는 입을 벌리고 공기를 들여마셨다. 남일의 류창한 언변에 도취되여 한동안 숨을 멈추고있은듯 했다. 광대뼈까지 불그레하게 물들이면서 그는 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실례입니다만… 저는 좀더 명백한 답을 듣고싶은데요…》

남일은 어처구니없다는듯 홍명희쪽을 흘끔 돌아보았다. 이 검질긴 특파기자에게 붙잡힌것이 애당초 잘못된 일이였다는 표정이였다. 그때 처음으로 홍명희가 그들사이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기자선생.》 그는 두눈을 가늘게 쪼프리고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세상사람들 거개가 자기에게 어떤 능력과 자질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죽어간다는 사실에 류의하십시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자기의 능력이상의것을 할수 있다는 자부와 용기가 있습니다. 당신도 알고있는바이지만… 보시오, 모두가 패배를 예언하던 때에도 우리는 투쟁을 계속했고 끝내는 이겨내였지요.》

이렇게 말하고나서 남일에게 부탁했다.

《내 말을 좀더 정확히 통역해주시오.》

그러나 벤꼬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죄다… 듣습니다. 부수상선생 어서 말씀하십시오.》

《좋습니다. 당신앞에 지금 두사람이 서있습니다. 구태여 소개를 하지 않아도 어떠한 과거를, 어떠한 경력을 가지고있는지 당신도 잘 압니다. 그러던 우리가 얼마나 변모되였습니까. 초야에 묻혀살던 내가 공화국 정부의 일원으로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교육사업을 하던 사람이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인들 했겠습니까. 이렇게 어제날 신문배달을 하던 젊은이가 련합부대장이 되고 산골막바지에서 화전을 일구던 감자바우청년이 영웅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오늘호 우리 신문들을 보십시오. 11명의 젊은이 처녀들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습니다. 어떻게 되여 이런 경이가 이루어진것 같습니까. 그건 바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를 키워주셨기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력사의 갈피에서도 찾을수 없는 가장 귀하고 큰 사랑과 믿음으로 우리 인민을 내세워주셨기때문입니다.

기자선생, 그 어느 전선, 어느 마을에서 그 누구건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십시오. 그러면 그 누구에게나 우리 장군님의 사랑과 은덕에 대한 뜨거운 이야기가 있다는것을 알수 있을것입니다.》

홍명희가 말을 마치자 벤꼬는 낡은 가죽잠바주머니에 수첩을 찔러넣었다. 아직 그는 그 수첩에 글 한자 적어넣지 못하였다. 그러나 광택이 없던 그의 푸르스름한 두눈이 지금은 파아란 반점같이 타오르고있었다.

《고맙습니다, 부수상선생!》 그는 환희에 넘쳐 말했다. 《인제는 다 알만합니다. 부수상선생의 조언대로 영웅이 된 인민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리하여 김일성동지께서 키우신 영웅적인민의 새 모습에 대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수상선생! 고맙습니다. 총참모장동지!…》

털모자를 눌러쓰고 거듭 사의를 표하고 그는 물러갔다. 그가 주차장쪽으로 달려가는것을 지켜보던 두사람은 약속이나 한듯이 서로 마주서며 미소했다. 홍명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자기가 남일에게 무엇인가 말하고싶은것이 있어 여기 왔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사실상 더는 할 말도 없었다. 그가 암시하고자했던 그 말을 방금 스딴도르 벤꼬와 마주서서 다해버렸던것이다.

두툼하게 쌓여있는 눈더미들이 소리없이 녹고있었다. 해볕은 따스했고 눈을 들쓰고있는 숲속의 나무들은 고요한 명상에 잠겨있었다. 경쾌한 하모니카반주에 맞춘 노래소리가 은빛의 황홀한 세계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음향처럼, 아름다운 색채처림 조화롭게 울려오고있었다.

 

지평선 아득한 벌판 전차 한대 달리는데

분홍손수건 분홍손수건 펄펄펄 오래 나붓겨

 

홍명희는 승용차쪽으로 걸어갔다. 경위중대장이 도울 일이 있을가 해서 다가왔지만 팔을 내저어 쫓아버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사색에 잠겨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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