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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1-2   19-12-08
강산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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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최고사령부는 엄숙한 정적속에 잠겨있었다. 사람들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걸었고 말을 해도 거의 속삭이다싶이 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고도로 긴장된 마음들이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 향하고있었다. 그이의 집무실에서 울리는 전화종소리는 물론 그이께서 지도를 번지시는 소리마저 마음의 귀로 듣고있었다. 이렇게 밤이 가고 다시 날이 밝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손으로 연필을 그루박으며 주의깊게 문서를 번지고계시였다. 전선사령관 김책이 올린 전투상보가 총참모부에서 작성한 정황지도우에 펼쳐져있었다.

고요했다. 탁상시계의 초침소리만이 긴장한 사색의 흐름을 재여가고있었다. 강부관장이 들어와 아래로 드리운 창가림을 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서늘한 바람결에 연록색 카텐이 하느적거렸다. 이름모를 새들이 창밖에서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저네들의 숨넘어가는 언어로 새날의 일과를 토론하고있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신듯 했다. 여전히 전투상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거기에는 락동강전선의 처절한 공방전의 전모가 그려져있었다. 사품치는 강을 건너 교두보를 확대한 최현사단의 전투행로도 다 밝혀져있다. 대구와 부산을 지향한 모든 련합부대 지휘관들, 전투원들이 마지막 총공격의 명령을 기다려 가슴조이고있는 심정이 글줄마다에서 엿보이고있다.

웅근 폭음이 창유리를 흔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드시였다. 비로소 강부관장을 알아보고 연필을 놓으시였다.

《최용건동무한테선 아직 소식이 없소?》

《장군님! 30분전에 렬차가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천쪽에서 적기들의 폭격으로 철다리가 끊어졌습니다. 아직 숙천-문덕간 철길에서는 적기들의 공습이 계속되고있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인천-서울지역의 위급한 정황때문에 신의주에 나가 예비부대조직사업을 하고있던 최용건을 급히 부르시였었다. 그런데 적기들의 폭격으로 예정보다 퍼그나 늦어질것 같다.

《알겠소, 도착하는 즉시 알려주오.》

강부관장이 발끝걸음으로 문을 열고 나가자 그이께서는 구내전화기를 들고 남일을 찾으시였다. 잠시후 북관사람들의 강한 억양을 가진 남일의 목소리가 진동판을 울렸다.

《장군님! 남일이 전화받습니다.》

《남일동무, 내가 준 과업은 어떻게 되고있소?》

《지금 하고있는중입니다, 장군님!》

《…》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송수화기를 꾹꾹 누르시였다. 그때마다 진동판을 울리는 전류의 흐름이 도간도간 끊어지군 했다. 남일에게서는 숨소리조차 없었다.

이윽고 그이께서 또 조용히 물으시였다.

《언제 보고하겠소?》

《오후 5시에 보고드리겠습니다, 장군님!》

《기다리겠소.》

《알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놓고 천천히 탁상일력에 눈길을 주시였다. 미제의 대규모적인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지 벌써 3일째이다. 그동안 세계전쟁사에서 가렬처절하기로 그 류례를 찾기 힘든 월미도의 격전이 계속되였다. 불과 4문의 포로 장비된 포병 1개중대와 1개의 보병중대력량이 1 000대의 비행기, 수백척의 대소 함선, 5만의 상륙부대와 맞서 싸웠다. 전대미문의 포격과 폭격이 그칠새없이 퍼부어졌다. 보고된데 의하면 어제 하루만해도 적의 비행대는 100차례이상 출격하여 손바닥만 한 섬우에 3 000여개의 폭탄을 퍼부었다고 한다. 지금 그곳에서는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시였다. 성깃성깃해지는 백양나무잎사귀들이 파르르 떨고있다. 어데선가 웅근 폭음이 또 울려왔다. 그이께서는 귀를 강구고 그 소리를 듣고계시였다.

조국에 커다란 위험이 닥쳐오고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전선과 후방이 차단되고 락동강전선의 주력부대들이 적의 포위속에 들수 있다. 때문에 그이께서는 이미 작전국에 새로운 작전전략적가능성을 검토할 과업을 주시였었다. 똑같은 임무를 남일에게도 주시였는데 그때부터 남일은 연 사흘째 꼬바기 방에 들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담배연기로 방안을 꽉 채우며 잠도 때식도 다 잊고 일체 면회마저 금한다고 한다.…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탁자앞으로 돌아오시였다. 방향참모가 도착했다는 보고였다.

《방향참모동무가?… 어서 들여보내오!...

잠시후 대좌의 견장을 단 방향참모가 들어섰다. 그와 더불어 화약가스냄새가 흘러드는듯 했다. 그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지시로 인천-서울지역의 정황을 료해하고 돌아온 길이였다. 떠날 때부터 이 시각까지 한잠도 못잔것이 알렸다. 충혈진 두눈을 줄곧 찌긋거리며 그는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수고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작전대가까이 이끄시였다.

《그곳 형편이 어떻소?》

방향참모는 다시 몸을 꼿꼿이 폈다. 차가성을 가진 대좌직급의 이 방향참모는 간결하고 정확하게 자기의 생각을 정리할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흥분이 앞선것 같았다. 의지력이 있어보이는 아래턱을 쑥 내밀고 그는 청높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적들은 미제 10군단의 1제대인 미1해병사단을 선두로 인천항의 안벽을 폭파하고 비행대와 함포사격의 엄호하에 상륙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방어부대들은 인천기상대가 있는 언덕에 화력진지를 구축하고 적들과 치렬한 전투를 벌리고있습니다.》

《우리의 력량은?》

《지금 인천방어부대들로는 전선경비사령부소속 경비대 2개 대대, 철도복구대 1개 대대와 2개의 박격포중대가 있습니다.》

《?…》

그이께서는 무등 놀라시였다. 방향참모의 꽉 부르쥔 힘줄투성이 주먹을 얼핏 바라보시였다.

《서울방어력량도 대단히 미약합니다.》

방향참모가 계속했다. 《최고사령부의 명령에 의해 이동해가는 남포지구의 땅크부대와 철원에서 떠난 독립려단은 이틀후에야 서울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는 이어 영등포구와 서대문구에 전개된 방어력량을 하나하나 렬거하였다. 그럴수록 그이께서는 날카로운 의혹심이 가슴을 찌르는것을 느끼시였다. 너무도 엄청난 무력대비이다. 사전에 배비했던 전투력있는 부대들이 줄어들었다…

그이께서는 지난 7월, 서울해방직후에 벌써 적들이 우리의 전선과 후방을 끊을 목적으로 대규모 상륙작전을 기도하리라는것을 예견하시였다. 하여 경기도방어지역 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부대들을 증강하시였었다. 전선이 멀리 남으로 이동하는데 따라 최사예비대의 땅크 및 포병부대들까지 보충배비하시였었다. 그런데?…

잠시후 머뭇거리던 방향참모가 입으로 힘껏 공기를 들이마시였다. 그의 구리빛 이마와 목에서 피대가 부풀어올랐다.

《최고사령관동지! 이번에 알아본데 의하면 경기도방어지역 군사위원회는 적들이 군산으로 상륙할것으로 판단하고 제87보병사단을 비롯한 부대들의 일부를 그곳으로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인천상륙은 기만술책이라고 보았다는것입니다.》

《?…》

《그뿐아니라 최고사령부에서 지시한 방어공사도 제대로 해놓지 않고있었습니다. 분명 의식적인 태공 아니면 해독행위였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저는 경기도방어지역 군사위원회안에서 암해분자, 해독분자들이 책동하고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이번에 그곳에서 리승엽을 등대고 오만하게 굴던 작전부장 등과 날카로운 충돌이 있었지만 개인감정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만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방안을 거니시였다. 무거운 걸음이였다. 그이께서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주단우에는 희여스름한 자욱들이 새겨지고는 천천히 스러져갔다.

암해분자, 해독행위… 최근 심상치 않은 일들이 몇번 보고되고있었다. 무슨 《토지조사사건》이라는것으로 서울시의 많은 애국자들과 당원들이 의심받고 구류되였던 일들이 있었다. 그 내막을 추적하던 해당 일군은 암살되였다. 그런데 오늘은 또… 이 모든것을 밝혀내야 한다. 해독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미칠듯이 달려드는 적들을 저지시키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시간을 잃으면 안된다!…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차동무, 이제 그곳에 주둔한 모든 부대들은 새로 조직된 서해안방어사령부에 소속될것이요.》

그이께서는 얼핏 탁상시계에 눈길을 주시였다.

《동문 이제 나와 같이 새로 조직된 련합부대를 돌아봐야겠소. 인천, 서울 지구에 투입할 력량이요.》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오후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새로 조직된 련합부대에 대한 지도를 마치고 수도로 돌아오고계시였다. 황주-흑교로상에서 적기들의 폭격으로 다리가 끊어지고 긴 구간의 도로가 심히 파괴되였으므로 산기슭의 달구지길로 멀리 에돌지 않으면 안되였다. 승용차가 굽인돌이를 에돌 때마다 눈부신 해빛에 차창이 번쩍거렸다. 하늘높이 정수리를 찌른 뽀뿌라나무들이 강기슭을 따라 위병들처럼 늘어서있었다. 하늘은 유리같이 투명했다. 좋은 날씨이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래도록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마음이 쓰리시였다. 새로 조직된 련합부대의 보잘나위없는 장비때문에 특히 괴로우시였다. 보총도 없는 병사들, 허리에 수류탄 하나씩만 차고있는 병사들이 태반이였다.…

승용차가 속도를 죽이며 경적을 울렸다. 앞쪽에서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린 농군이 허둥지둥하며 소궁둥짝에 채찍을 안기고있었다. 길복판에서 달구지를 비켜세우려는것이였다. 그러나 비좁은 길이여서 뜻대로 되지 않는것 같았다. 농군은 느렁뱅이 황소의 뿔을 당겨 돌각담까지 끌어올리고서야 머리를 돌렸다. 그 순간 농군은 입을 쩍 벌리며 두눈을 둥그렇게 떴다. 승용차의 차창밖으로 머리를 쑥 내밀고있는 인민군대좌의 긴장이 어린 눈빛과 마주친것이다. 요란스러운 별들이 그보다 먼저 농군을 놀라게 했는지도 모른다. 농군은 얼결에 두손을 앞에 모두어쥐고 허리를 굽석했다.

차창밖으로 내밀었던 방향참모의 머리가 도로 쑥 들어왔다. 목덜미가 붉어져있다. 그이께서 이 모든것을 띄여보셨는지 해서 가만히 곁눈질을 하고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여전히 방금 돌아보신 부대의 병사들을 눈앞에 그려보고계시였다. 총이 없는 병사들, 인천, 서울의 격전장으로 떠나갈 그들에게 메워줄 총이 없다!…

차창밖으로는 여전히 례사로운 초가을풍경이 흘러지나고있었다. 돌서덕아래로 흐르는 내가에서 군청색 물촉새가 키낮은 관목숲을 헤치며 《쩨!-》하고 날아올랐다. 반두질하는 애들이 물황철나무 한그루가 비스듬히 자빠져있는 물굽이쪽으로 와- 밀려가는것이 보였다. 메뚜기를 주런이 꿰여든 어린 소녀가 마주오는 승용차를 피하여 미리감치 돌담아래로 내려섰다. 올롱한 눈으로 승용차를 바라보면서 한손가락을 입에 물고있다. 지금 저애들은 자기들의 머리우에 얼마나 무거운 비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는지 전혀 모르고있다. 전선에 나간 아버지, 형님, 누나들이 얼마나 치렬한 싸움을 벌리고있는지 알지 못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힘들게 숨을 내그시였다.

지금 락동강전선에서는 미친듯 한 폭우속에서 결전을 벌리고있다. 전선사령관 김책의 보고에 의하면 최현은 창녕방면에서 락동강을 건너 교두보를 확대하고있으며 서울제4보병사단장으로 갓 임명된 박정덕은 령산에서, 오백룡은 왜관동북쪽에서 대구를 위협하고있다. 지금 그들모두의 생각은 오직 공격, 또 공격이다. 눈앞에 대구가, 하루길사이에 부산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이 저리시였다. 적들의 인천상륙으로 하여 우리 인민군대가 두 전선에서 기술적으로 수적으로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과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이 준엄한 현실, 이 시점에서 비상한 대책을, 단호한 결심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래일이면 늦는다!…

돌연 그이께서 방향참모에게로 머리를 돌리시였다.

《차동무, 하나 묻겠소.》

《예, 최고사령관동지!》

《동무생각엔… 인천, 서울 지역에서 적을 얼마간 더 견지할수 있을것 같소?》

《…》

방향참모의 두눈에 어슴푸레한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당황해하는것 같았다. 거무스레한 볼우에 재빛의 반점들까지 두드러졌다. 그는 눈시울을 껌벅거리며 속절없이 갓난애기 머리만 한 주먹을 쥐락펴락하고있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제 생각엔… 지금형편에서…》

《어서 말하오.》

방향참모는 속이 타드는듯 두툼한 입술을 실룩거렸다. 또 한동안 갑자르다가 마침내 혀로 입술을 감빨았다.

《지금 적들은… 대규모의 무력으로 드디여 인천항에… 상륙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상륙하면 비행대와 포병의 엄호하에 수백대의 땅크를 앞세우고 공격해올것입니다. 더우기 인천-서울간대도로를 따라 공격해오면…》

《동무가 거기서 적들의 침공을 막는다고 생각해보오. 현존 방어력량을 가지고 며칠간 더 견지할수 있겠소?》

《최고사령관동지! 저로서는… 솔직히 말씀드려 적아간의 엄청난 력량상대비로 보아… 5일이상은 더 막을수 없을것 같습니다.》

《5일?》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러면 락동강전선의 우리 주력이 적의 포위에 들수 있다.

별안간 차바퀴소리가 요란해졌다. 자갈들이 바퀴짬에서 뿌려져나가고 차체에서는 줄곧 찌걱찌걱하는 소리가 났다. 길이 험해진 모양이다. 차가 들출 때마다 화끈 달아오른 방열기에서 김이 씩씩 솟구쳤다. 방향참모의 이마우에도 땀이 한벌 내돋고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별안간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이께서는 대기에 가득찬 볕에 그슬린 풀의 향기를 가슴가득 들이키시였다. 앞에 누런 등판이 펼쳐져있었다. 그곳에서 곡식이 익는 구수한 냄새가 흘러왔다. 하늘중천으로 쪼각구름들이 모여들고있었다. 돌연히 그 구름장을 향하여 시꺼먼 회오리가 쫘-악 날아올랐다.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은 새떼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시창유리에 머리를 바투 가져가시였다. 벌써 승용차는 등판에 올라 넓은 조밭을 한옆에 끼고 달리고있었다. 다시 또다시 새떼가 날아올랐다. 승용차를 앞질러 시커먼 연기뭉테기처럼 푸루루!- 하고 날아올라서는 사방 흩어져 휙-휙 돌고있었다.

《차를 세우오!》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차가 멎자 그이께서는 무리지어 날아도는 새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면서 급히 길섶으로 내리시였다.

수백수천을 헤아리는 새떼, 날개의 퍼덕임소리가 세찬 파도소리처럼 머리우를 휩쓸었다. 어느덧 하늘을 덮을듯 날아올랐던 새떼가 일시에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물속에 자맥질하듯 넓은 조밭에 잠겨들었다. 조이삭마다 매달리는통에 등판의 조밭이 일시에 나가넘어졌다. 람루한 적삼을 씌워놓은 허수아비들만이 우뚝 드러났다. 그런데 그 허수아비꼭대기에까지 새들이 올라앉아 정수리를 마구 쪼아대고있었다.

《이럴수가 있나!》

김일성동지께서 허리를 굽혀 손에 잡히는대로 흙덩이 하나를 골라쥐시였다. 뒤미처 차에서 뛰여내린 방향참모도 어망결에 커다란 돌맹이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이때 조밭가운데에 늘여진 새끼줄에서 왱강쟁강하는 깡통소리들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자 한무리의 새들이 푸르르!- 세찬 바람소리같이 날아올랐으나 다시 밭의 저쪽에 내려앉았다. 그쪽에선 깡통소리들이 울리지 않았다. 줄이 끊어진것 같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누군가 계속 줄을 당기고있다. 밭의 한쪽은 왱강쟁강 부산스러웠으나 다른 한쪽은 조용했다. 그곳에서는 숱한 새들이 곤두박질을 해가며 한해농사를 결단내고있었다.

《이런 변이라구야.》

김일성동지께서 뒤를 돌아보시였다. 민망해하고 무척 난감해하시는 표정이였다. 이윽고 급히 밭가운데로 걸어들어가시였다. 방향참모와 부관장도 뒤를 따랐다. 부관장은 손에 들고있던 커다란 돌맹이를 쥐여뿌리기까지 했다. 《훠이! 훠이!》하며 팔을 힘껏 내젓고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굳어졌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에게 주의를 주시고 서덜밭 한쪽을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그곳, 느암이며 제비초리, 어저구들이 무성하게 자란 풀숲가운데 키낮은 뽕나무 두세그루가 서있었다. 낮동안의 더위에 달아오른 등판의 흙냄새며 시들어가는 쑥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그 풀숲 한가운데, 뽕나무아래에 멀쑥한 농립모를 눌러쓴 사람이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들고있었다. 그의 하얗고 가는 발목에 새끼줄이 감겨있는것이 보였다. 발을 들었다놓았다할 때마다 줄에 매단 깡통들이 소란을 피웠다.

《원, 저사람이?!》

방향참모가 가느다랗게 부르짖었다. 기가 차는 모양이였다. 당장 달려가 한심한 게으름뱅이의 덜미를 잡아끌려는것 같았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 또 한손으로 막으시였다.

《가만!》

깡통소리들이 멎었다. 들었다놓았다하던 발이 털썩 내려졌다. 다른쪽 하얀 발가락으로 발등을 쓱쓱 긁어대였다. 그리고나서 머리우에 들고있던 책을 가슴우에 올려놓았다. 청을 돋군 글소리가 랑랑하게 울려왔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

 

산에는 금은보화

바다엔 고기

 

넓고 푸른 들에는

오곡이 물결치는

 

장군님 세워주신

참 좋은 나라

 

소년의 목소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까딱 움직이지 않으시였다. 얼굴가득히 미소를 그리시였다. 그이의 손에서 흙덩이가 부서져 부실부실 떨어져내렸다. 소슬한 바람결에 그이의 이마에 드리웠던 한줄기 머리칼이 나붓기였다. 어데서 날아온것인지 메뚜기 한마리가 그이의 어깨우에 뛰여올랐다. 메뚜기는 가느다란 집게발을 연신 놀리며 어깨우를 재여갔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여전히 소년의 글소리를 여겨들으며 서계시였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

 

누구나 일 잘하고

글 잘 배우고

 

오각별공화국기

푸른 하늘 높이 나는

 

장군님 이끄시는

참 좋은 나라

 

소년은 제흥에 겨워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해볕이 자글자글 내려쪼였다. 등판아래 강기슭에 늘어선 백양나무 우듬지가 하느적거렸다. 여전히 조밭에서는 미칠듯 한 희열에 날뛰는 새떼가 바글바글 끓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걸음을 옮기시였다. 처음엔 발끝걸음으로, 다음엔 허리까지 굽혀 무엇인가 찾고계시였다.

마침내 그이께서는 줄이 끊어진데를 발견하시였다. 끊어진 줄을 서로 당겨 단단히 옭매놓은 후 줄을 가만히 당겨보시였다. 깡통들이 춤추며 떠들었다. 이번엔 좀더 힘을 주어 당기시였다. 온 조밭이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이삭마다 매달렸던 새들이 놀라 뛰쳐났다. 청승맞게 서있던 허수아비도 찢겨진 팔소매를 너펄거리기 시작했다.

새들이 까맣게 날아올랐다. 방향참모가 다가와 줄을 당기고계시는 그이를 넋잃은듯 우러르고있었다. 등뒤에서는 여전히 소년의 글소리가 랑랑히 울리고있었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

 

그이께서는 귀를 기울여 랑랑한 그 목소리를, 한 소년의 마음속에 깃든 보석같은 꿈과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계시였다.

 

오각별 공화국기

푸른 하늘 높이 나는

 

장군님 이끄시는

참 좋은 나라

 

그이께서는 문득 어깨에 총도 없이 떠나던 병사들의 모습을 상기하시였다. 비록 허리에 수류탄만 하나씩 차고있었지만 준엄하고도 굳센 모습들이였다. 바로 그들이 저 마음속에 꿈을 키워준 아버지, 형님, 누나들이였다.

그렇다! 전쟁이 아무리 가혹하다 해도 이 꿈과 노래는 없애지 못하리라. 아무리 모진 격난도 저 순결한 꿈과 노래를 간직한 심장은 놀래우지 못하리라!…

그이께서는 허리를 펴고 일어서시였다. 가슴속에서 용암이 끓고있었다. 밝은 미소가 비꼈던 그이의 안광엔 어느덧 강렬한 섬광이 펀뜩이였다. 지금까지 괴로운 사색속에 펼쳐오신 비상한 결심이 순식간에 무르익고있었다. 가장 크고 억센 믿음에 기초한 그 결심… 이러한 인민이 있는 한 우리는 기어이 승리한다. 그 어떤 원쑤도 우리 인민은 결코 꺾지 못한다!…

강부관장이 다가오고있었다. 그이께서는 팔목시계를 보시였다.

《음-》

떠들썩하던 조밭이 조용해졌다. 그이께서는 소년의 글소리가 울리는 곳을 잠시 바라보신 다음 걸음을 옮기시였다. 걸음마다 한아름씩 조이삭을 걷어안으시였다. 그때마다 영근 이삭들이, 풍요한 가을이 그이의 넓으신 품에 안기군 했다. 이윽고 승용차에 이르시였다.

문득 그이께서는 이상한 느낌에 머리를 돌려보시였다. 아닐세라 밭머리 저쪽에 소년이 서있었다. 농립모를 벗어들고 해빛을 가리며 잔뜩 쪼프려 뜬 눈으로 유심히 이편을 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소년을 향해 손을 저어주시였다.

운전사가 발동을 걸었다. 이어 차는 떠났다. 누런 조밭에서 구수한 냄새가 흘러들었다. 무르익는 가을의 향기, 차창우에선 해빛이 흥그러이 뛰놀았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밭머리에 서있던 소년이 조밭을 가로질러 달려나오는것을 보시였다. 처음엔 뽀얗게 일어난 먼지발속에 가리워지다가 또 후사경속에 뛰여들었다. 종주먹을 부르쥐고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길복판에서 우뚝 멎었다. 그리고 두손을 입에 모아 목청껏 부르짖었다.

《장군님!-》

가슴속을 쩌릿하게 스쳐간 그 류다른 감각으로 그이께서는 이 절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시였다.

승용차는 이윽고 등판을 넘어달리다가 마침내는 큰길에 나섰다. 그이께서는 다시 뒤를 돌아보시였다. 먼 등판우에 서있는 소년의 모습은 어느덧 하나의 작은 점으로 사라져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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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9 짐승화된 인간들로 가득찬 이 세상을 어찌해… 강산 07-26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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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3 [통일수필] '김삿갓' 대본 작가가 말하… 강산 07-22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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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5 반기문 전유엔사무총장의 변함없는 반북 반… 이흥노 07-16 675
7944 [통일수필] '김삿갓 북한방랑기' 유감 강산 07-16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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