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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서문 현대어로의 번역   15-12-31
김박사   176,273
 

지금으로부터 오백여년 전엔

세종대왕께선 진서*와 언문의 병용을 주장하셨고

지금은 언문 전용론과 진서*와 언문 병용론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훈민정음의 서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아

훈민정음 서문의 원문과 언해본을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며 다시 한 번 읽어 보다

기존의 해석들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기에

소견이나마 많은 분들과 공유하기 위한 작업을 하기로 했다


훈민정음 서문은

원문(진서*)와 언해(원문을 언문으로 해석한 것)

의미하는 바도 각각 다르고

원문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이 될 수 있고

언해도 두 가지 뜻으로 해석이 된다

28자의 명칭도 '훈민정음''언문'의 두 가지이다

이러한 양면성兩面性이

후세의 학자들이 훈민정음 서문을 이해하는 데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특히 강단 사학자들의 친일사관에 맞춘 해석을

재야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바로 잡으려면

진서*가 우리 민족이 만들어 사용하던 문자라는 것과

언문이 가림토문**에서 발췌된 것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증명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친일 강단 사학자들 쪽이나 재야 민족주의 사학자들이나

두 가지의 다른 의미의 원문과 언해를

각자가 이해하려는 방향의 한 가지 의미로 해석하려니 얼마나 고역이었겠는가?


훈민정음의 서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는데

다음의 네 가지가 그것이다


1. 이 양면성이 어떠한 배경에서 생겨났으며

2. 훈민정음이 어떠한 목적으로

가림토문**으로부터 발췌되었는가?

3. 또한 훈민정음 원문 54자 중에 '흐를流류' 만은

    그 어떤 해석에서도 그 뜻이 간과되고 있다

    4. 언해의 전차와 사맛디 또한 제대로 해석이 되어 있지 않다

위의 네 가지 사항을 꼭 짚고 넘어가야만

원문은 원문대로

언해는 언해대로

원래의 취지대로 해석이 가능하다


    훈민정음 서문에 양면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조선은 이성계의 혈통에 대한 명나라 사서의 엉터리 기록

(명나라 법전 및 역사서로 알려진 대명회통(大明會通)에서 조선 왕조의 계보를 작성하던 도중에 이성계의 실제 부친인 쌍성총관부의 유력자인 이자춘이 아닌 이인임을 이성계의 부친으로 기입하여, 조선과 명나라사이에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였다) 으로부터 시작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청사를 보냈고 이를 외교적으로 이용한 명나라로부터 내정간섭을 많이 받고 있었다


해서 널리 쓰이고 있지 않던 가림토문**

조선의 독자적인 문자로 반포하여

조선에서 널리 쓰이도록 하는 것이 허락될 수 없는 상황에서

명나라엔 훈민정음이 진서*의 발음을 명나라의 발음을 따르기 위해 만드는 것처럼 나타내고

조선인들에겐 훈민정음으로 진서*의 정음을 가르치며

말은 있으나 그 말을 표기할 문자가 없어 절름발이였던 언어생활을

문자(진서와 언문)을 함께 사용해 균형을 잡아 윤택하게 할 목적이었기에

훈민정음 서문이 양면성을 가질 수 밖에 없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명칭은 훈민정음을 (가림토문**으로부터) 발췌할 당시부터 훈민정음과 언문으로 두 가지가 있었는데

훈민정음이란 명칭은

진서*의 발음을 천지인의 섭리에 맞도록 하기 위한 발음을

널리 쓰이게 하기 위해 필요한 발음을 가림토문**으로부터 발췌했고

언문彦文이란 명칭은

진서의 정음을 기록하고

우리 말을 기록하는데 쓰일 때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또한 선비 彦 언 자를 써서 선비들이 꼭 배워야 할 문자임을 강조했다


*'진서'는 지금 우리가 '한자'라고 부르고 있지만

6천여년전부터 동이족으로부터 만들어져 사용된 문자를

서기전 2백년경에 세워진 '한나라'의 이름을 앞세운 '한자'라 부를 이유가 전혀 없는 문자로

우리 조상들이 일컫던 '진서'란 명칭이 있었으니

근거없는 '한자'로 명칭하기 보단 '진서'로 명칭하기로 한다


진서가 우리 조상님들께서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드시어 물려주신 문자란 증거들이

재야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넘쳐나니

여기선 아직 아무도 제시하지 않았던 예를 하나만 들어보겠다


꾸짖을 叱 질 자를 보면

입 口 구 와 일곱 七 칠 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때리다' '치다' 그리고 '공격하다''치다' 한 단어로 같은 의미로 쓸 수 있다

'치다'에서 ''을 일곱 七 ''의 칠로써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입에서 나온 말로 친다 비난한다의 뜻으로 꾸짖을 叱질 자를 만들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인들은

일곱 七 칠은 '치이'

칠 打타는 ''

칠 攻공은 '' 으로 발음한다

또한 七의 지나식 발음인 '치이'로 때린다나 질책한다는 뜻을 가진 문자는 없다

결국 꾸짖을 叱질 자의 조자원리를 통해서도

왜인들과 친일파들에 의해 한자라 불리우는 '진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신 문자란 것을 알 수 있다

얼빠진 친일파들은 아마도 꾸짖을 叱질 자 하나만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다고 우길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도 많은 문자들이

우리 조상들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는 문자란 증거가 많으니 훈민정음 서문을 해석하는 본 글에서는

진서가 우리 문자란 증거의 나열과 설명은 여기서 멈추도록 하겠다


지금껏 왜인들과 친일파들에 의해 유통되고 있는 '한자'라는 명칭은 그리 명칭할 근거도 없을 뿐더러

조상님들을 욕되게 하고

우리 자신의 정신적 뿌리를 뒤흔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배달의 후손이라 생각하고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진서'에 감히 '한자'란 명칭을 붙여선 안 될 일이다


**우리 사서의 가림토문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일부 국수주의적인 일본 학자들의 주장대로

오백년 역사의 훈민정음이

1300년 역사의 아히루 문자를 원형으로 한 것이라면

조선의 학자들이

1300여년전부터 쓰였다는 아히루 문자가 있는 왜에 가서

아히루 문자를 배워왔다는 기록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1600여년전부터 쓰였다는

구자라트 문자를 원형으로 한 것이라면

인도의 구자라트 지역에 가서 구자라트 문자를 배워 왔다는 기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친일사관에 쩔은 강단사학자들도

그런 기록은 찾을 수 없고

명나라의 강남¹ 즉 양자강 이남의 발음에 정통했던 황찬(요동에 귀양살이 하고 있던 전직 명나라 관리)를 열세 번이나 찾아가 옛조선의 정음을 찾아내려고 했다는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서의 육서까지 동원해 언문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얼치기 강단사학자도 있긴 하다 그러나 '훈민정음'이란 큰 제목 옆에 있는 언문은 분명 가림토문을 모방한 것이란 설외에는 어떠한 가정도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발해의 국서를 받은 당나라 조정에서 누구도 그 국서를 해석하지 못하였는데 사천지방 출신인 이태백이 발해의 국서를 해석하고 답신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의 발해의 국서를 당나라 조정에서 동이족인 진秦나라가 있던 사천성출신의 이태백이 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데 당나라 때에도 동이족의 거주 지역에선 가림토문이 쓰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볼 수 있겠다.

20061114일에 홍콩의 발해학자 김광석 교수의 발해문자 해독 발표에서 발해문자는 진서와 가림토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1. 자치통감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면서

    배를 잘 만드는 양자강 이남의 지역민들을 데려다가

    배를 만들었는데

    수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지역민들이 배를 만들다가 죽거나

    배를 만들다가 죽느니 도망치는 것을 택한 자들이 많아

    텅빈 지역에 고구려유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살게해

    고구려 패망이후 양자강 이남 지역에선

    고구려의 진서 발음이 표준음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선 조선시대 까지도 조선과 같은 말을 쓰고 진서의 발음도 같았다고 한다


會帝再發三吳兵征高麗 三吳兵皆相謂曰 往歲 天下全盛 吳輩父兄征高麗者 猶太半不返 今已罷弊 復爲此行 吳屬 無遺類矣 由是多亡命 郡縣捕之急 聞元進擧兵 亡命者雲集

-自治通鑑 隨記-


高麗之民 多離叛者 勅徙 高麗戶三萬八千二百於江淮之南 京西諸州空曠之地 留其貧弱者 使守安東

-自治通鑑 唐記-


지금까지 훈민정음 서문이 양면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와 훈민정음이 어떠한 목적으로 가림토문**으로부터 발췌되었는가 를 알아보았다


다음은 원문의 흐를流류 자와 언해의 전차와 사맛디 를 원문과 언해본을 빠뜨리지 않고 제대로 풀이해 보기로 한다


訓民正音 序文

훈민정음 서문


원문풀이

國之語音이 異乎中國하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할쌔
국지어음이 이호중국하여 여문자로 불상유통하므로

國之語音인가 國語之音인가?

국지어음은 나라의 말이 복수인 경우의 발음

국어지음은 나라의 말이 하나인 경우의 발음

國之語音의 國과 中國의 國은 같은가 다른가?

세종대왕이 명나라에 보이고자한 것은

국지어음의 국은 동북아시아 전체이고

중국의 국은 명나라이나

세종대왕의 내심으로 포현하고자 했던 것은

두 국國 모두 나라 즉 조선이었다

流通 널리 통용됨

이 널리 통용됨이란 뜻이 아니었다면

굳이 불상유통이라 할 필요없이

불통이나 불상통이라 했으면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문자표현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흐를流유 자를 넣은 것은

언해에도 나와 있듯이 '사맛다는 사무치다 즉 속 깊이 또는 끝까지 미치어 통하다'와 같이 나라 말이 나라 전체에 유통된다는 뜻이니 원문의 '불상유통'과 언해의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가 일치하게 된다

불상통이나 불통을 쓰지 않고 불상유통으로 표기한 것은

진서를 읽는 우리말 발음이 북경어권과 다르고

기득권층은 북경어권의 발음을 따랐기 때문에

진서의 우리 말 발음(정음)

문자인 진서와 함께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안에서 같은 문자의 발음이 달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세종대왕께서 문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발해만을 보하이만이라고 하는 얼빠진 자들이 있고

길림성을 지린성이라고 하는 얼빠진 자들이 많아지면서

나라 안에서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들은 현지 발음을 주장하며

발해만을 보하이만으로

길림성을 지린성으로 발음하면서도

'중국'에 한해서는 결코 현지발음인 중궈라 발음하지 않는

헷갈리는 기준의 발음을 하는 헷갈리는 자들인 것이다


현지어 발음이란

외국문자를 발음함에 현지인들과 같은 발음을 함을 일컫는 것이지 우리 문자인 진서를 발음함에 현지어 발음이라니?

하물며 북경어권 발음이 천지인의 도리에 어긋난 것이란 것이 만천하에 들어난 다음에랴?

國之語音이 異乎中國하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할쌔
국지어음이 이호중국하여 여문자로 불상유통하므로
(
진서를 읽는) 나라의 말 소리가 나라안?에서 달라

문자와 더불어() 같이(相서로)널리 통용되지 않고 있다


?중국中國을 나라안으로 해석한 것은

언해풀이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故愚民 有所欲言하야도
고우민 유소욕언하여도

그래서 백성들이 어리석어져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여기서 '어리석어져''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의 뜻이다


而終不得伸其情者ㅣ 多矣라
이종부득신기정자가 다의라
종국엔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이가 많다

予ㅣ 爲此憫然하야 新制二十八字하노니
여가 위차민연하야 신제이십팔자하노니
내가 이를 가엽게 여겨 28자를 새로 만드니


欲使人人아로 易習하야 便於日用耳니라

 
분석 16-02-25 02:02
 
한글은 애초에 진서의 발음기호에 불과했다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창제하신 것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을 너무 폄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 하십니까.
사이비 17-09-12 16:30
 
친일군사독재 재벌족벌 사이비덜의 경찰국가 후유증으로 사이비덜이 넘 많다. 순시리 그네 족속들 모두 사이비 광신자덜...이번에 다른 사이비덜에게 패했지만서두...
만주개장수 18-03-21 06:56
 
그당시 나라국으로 된것이 아니고  울타리 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서울에 안국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안국 여기서 국은 나라국인가요 울타리국인가요 ..

안전한국가 의 동네가 되는데  .. 나라국으로 사용하면 안될것입니다...  나라국 ...이 아닌 울타리국 으로 해야 맞습니다... 해례본에  중국이라 함은 황제가 계신곳이라고  설명이나와있습니다...황제가 사는곳 울타리국( 창과칼 그리고 방패 로 보호하고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는 부수한자가 그렇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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